'미충족 의료수요' 잡는다···희귀질환 신약 개발 활발
정부도 지원 사격, 희귀·난치병 환자 의료비 지원 ↑
종근당·녹십자·한미·한독 희귀질환 신약 개발 주목

[시사저널e=최다은 기자] 시장 규모가 작아 주목받지 못했던 희귀질환 치료제가 제약바이오 업계 블루칩으로 부상하고 있다. 희귀질환 치료제 특성상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고 만성질환 치료제보다 수익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희귀질환 치료에 국가적 지원이 늘어나면서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의지를 북돋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희귀질환자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국가 차원에서 중증·희귀질환 치료제 보장 강화에 힘을 실으면서, 일각에서는 관련 신약 개발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폭제가 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돼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환자 비용 부담이 낮아지면 처방이 늘어남에 따라 개발 업체도 높은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담긴 제약 산업·약제비 관련 내용을 보면 치료효과가 높은 중증·희귀질환 치료제 보장성 확대가 골자였다. 또 질병관리청은 저소득층 희귀 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비 지원 사업을 확대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는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대상 질환이 기존 1189개에서 1272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사각지대에 있는 희귀 질환자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환자 가구와 부양의무자 가구의 재산 기준이 지역에 따라 약 1억∼2억5000만원으로 올라간다. 제약사가 만든 의약품의 약가를 우대하는 대상도 확대된다.

글로벌 희귀질환치료제 시장 규모./ 표=정승아 디자이너
글로벌 희귀질환 치료제 시장 규모./ 표=정승아 디자이너

업계에서는 빅파마들이 새로운 모달리티나 치료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관련 분야 기술수출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 만료를 앞둔 글로벌 빅파마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올해 기업 인수, 기술이전 등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약가 인하 압박이 덜할 희귀질환 신약 매력도가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 소재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는 지난달 미국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기업 인히브릭스(Inhibrx)를 22억달러(한화 약 2조9500억원)에 인수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빅파마들이 다양한 희귀질환 신약 라인업을 예고하고 있다. 

희귀질환 신약 분야 기술수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종근당은 지난해 11월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에 희귀난치성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CKD-510을 기술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계약의 전체 규모는 13억500만달러(약 1조7000억원)로 계약금만 1000억원이 넘는다. 종근당 기술수출 사상 역대 최대 규모 거래다.

국내에서는 GC녹십자, 한미약품, 한독 등이 희귀질환 치료제 신약 파이프라인을 강화하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분석 결과 글로벌 희귀질환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0년 1380억달러(약 180조원)에서 2026년 약 두 배 성장한 2680억달러(약 340조원)로 전망된다.

GC녹십자는 지난해 정기 주총에서 희귀질환 중심의 혁신 신약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GC녹십자는 지난해 11월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의 3상을 마치고 정식 허가를 획득했다. 헌터라제는 사노피의 ‘엘라프라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된 헌터증후군 치료제다. 2012년 3상 수행을 전제로 조건부 허가받은 희귀질환 신약이다. 산필리포증후군 A형 치료제(MPS III-A)인 ‘GC1130A’는 비임상을 완료했다. 희귀질환 분야 연구개발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근 R&D 부문 임원으로 관련 전문가를 영입하기도 했다.

한미약품은 성장호르몬결핍증, 선천성 고인슐린증, 단장 증후군 치료제에 대한 글로벌 임상 2상을 전개 중이다. GC녹십자와 공동개발 중인 파브리병 치료제 ‘LA-GLA’는 이달 국제 학회에서 긍정적인 전임상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한미약품에 따르면 LA-GLA 전임상 연구 결과를 토대로 희귀의약품지정(ODD)으로 지정을 준비 중이다. 환자 대상의 본임상도 조만간 준비할 계획이다.

한독은 국제 바이오 기업 소비(Sobi)와 희소 질환 사업을 위한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한독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내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소비의 희소 질환 치료제를 국내에 선보일 계획이다. 소비가 개발 중인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 성인 환자 치료용 ‘엠파벨리’, 면역성 혈소판 감소증 성인 환자 치료용 ‘도프텔렛’의 국내 허가를 진행 중이다.

희귀 질환은 환자가 2만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환자 수를 알 수 없는 질환을 말한다. 질환을 앓는 사람이 적지만 만성질환에 비해 개발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상업화에 성공할 경우 해당 시장에서 독점적인 입지를 가질 수 있다. 또 만성질환 치료제에 비해 가격이 높아 수익성도 좋다.

희귀의약품은 개발부터 출시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이 일반 의약품보다 짧다. 국내에서는 희귀의약품은 3상 임상 결과를 제출한다는 조건으로 2상을 마친 상태에서 허가해 주는 '조건부 허가'와 시장 독점권, 임상 보조금 등의 혜택이 있다. 해외에서는 세금 감면까지 더해진다. 임상시험에 적지 않은 노력과 비용이 소요됨에도 글로벌 제약사가 희귀의약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희귀질환 환자들은 치료제가 없어 근본적인 질병 치료가 어렵고 대체 치료제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 미충족 의료 수요가 매우 컸다”며 “다만 환자 수가 적어 시장성이 작다는 이유로 과거엔 개발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는데,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희귀난치병 치료에 국가적 지원을 늘리면서 제약사들의 개발 의지가 점점 높아지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이어 “개발에 성공한다면 시장을 독식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 요소”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