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 1000억원 이상 순손실 증권사 속출
한투證, 카뱅 덕분에 연간 순이익 1위
NICE신평 “올해도 부동산 손실” vs 증권사 “부담 없을 것” 목표주가 줄상향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국내 증권사들이 지난해 4분기에 대규모 충당금을 설정하면서 대부분 분기 적자 전환하거나 순이익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연간 순이익 1위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은 부동산 부실에 따른 대규모 충당금 설정에도 불구하고 카카오뱅크 지분법 이익에 힘입어 메리츠증권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신용평가사들은 올해도 국내 대형증권사들의 부동산 부실이 지속적으로 실적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증권사들이 이미 지난해 실적에 충당금을 충분히 반영했다며 증권주 목표주가를 줄줄이 상향하고 있어 대비되는 모습이다.

◇ 증권가 덮친 충당금 폭탄···한투證, 극적 1위 탈환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전날까지 대부분의 증권사 및 금융지주사들이 ‘매출액 또는 손익구조 30%(대규모법인 15%) 이상 변경 공시’를 통해 지난해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공개된 실적은 지난해 연간 실적이었지만 분기보고서를 통해 공개된 3분기 누적실적을 빼면 4분기 실적도 구할 수 있다. 그 결과 국내 대형증권사들은 대부분 4분기에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대형증권사 9곳 가운데 미래에셋증권(-1579억원), 한국투자증권(-258억원), 삼성증권(-72억), 하나증권(-2529억원), 신한투자증권(-1225억원), 키움증권(-1892억원) 등 6개사가 지난해 4분기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순이익을 낸 증권사는 NH투자증권(890억원), KB증권(225억원), 메리츠증권(1110억원) 뿐이었으나 이들도 감소추세를 보였다.

증권사들의 지난해 4분기 실적악화는 부동산 부실에 따른 충당금 설정이 배경이었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증권사 CEO 간담회를 통해 부동산PF 관련 충당금 설정을 최대한 설정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한국투자증권은 4분기에 부동산 부실에 따른 충당금으로 2000억원을 설정하고 해외부동산 등 지분법으로 반영되는 투자자산들의 평가손실도 투자자산손상차손 항목에 2500억원을 추가로 반영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규모 부동산 부실에 한국투자증권은 메리츠증권에 1위자리를 내줄 뻔했으나 카카오뱅크 당기순이익이 지분법으로 반영되면서 극적으로 2023년 당기순이익 1위 증권사에 올랐다. 한국투자증권은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들고 있는 2대 주주다. 카카오뱅크가 지난해 4분기에 75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면서 약 206억원이 한국투자증권 순이익에 더해졌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4분기에 해외부동산과 국내 PF에 대해 무려 약 4900억원의 충당금을 설정했다. 해외부동산 부실은 프랑스 마중가 타워를 포함한 것이고 태영건설 관련 1000억원의 충당금도 설정됐다.

삼성증권 역시 부동산 PF 및 해외부동산펀드 관련 충당금과 손상차손으로 각각 393억원, 1397억원 등 2000억원 가량이 반영됐다.

하나증권과 신한투자증권 역시 충당금 여파가 지속됐다. 하나증권은 1240억 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았고 신한투자증권은 부동산PF와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었던 해외 대체투자분에 대해 기초자산 재평가로 손실이 발생했다.

키움증권의 경우 영풍제지 사태 관련 미수금 약 4300억원이 손실로 반영됐지만 추가로 국내 부동산PF 및 해외 부동산 평가손실 관련 640억원도 실적에 반영됐다.

NICE신용평가사 리포트 중 해외부동산펀드 관련 도표
NICE신용평가사 리포트 중 해외부동산펀드 관련 도표

◇ NICE신평 “끝이 아니다” vs 리서치센터 “목표주가 상향”

신용평가업계에서는 올해도 부동산 부실이 지속적으로 증권사 실적을 발목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NICE신용평가는 전날 보고서를 통해 증권사들이 지난해 3분기까지 해외 부동산펀드 8조3000억원 가운데 4조6000억원 펀드에 대해서는 40%의 평가손실을 이미 반영했으나 3조6000억원에 대해서는 한번도 손실을 인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예리 선임연구원 등은 “2023년 4분기 해외부동산 관련 손실을 추가로 인식하였으나, 임차수요 감소와 고금리 기조의 지속이 해외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부동산 익스포져에 대한 추가손실발생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 산하 애널리스트들은 증권사들의 실적발표에 맞춰 이미 증권사들이 충분히 손실을 회계에 기반영했거나 추후 반영하더라도 부담이 많지 않다는 보고서를 계속 내놓고 있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한국투자증권 지주사인 한국금융지주 관련 리포트에서 “구조조정이 2024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해외부동산펀드 관련 손상 인식은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2024년 충당금 및 손상 규모는 2023년 대비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김재철 키움증권 연구원 역시 “지난해말을 기점으로 해외투자자산에 대한 큰 폭의 평가손실이 대부분 반영되었다는 점과 지난해 보수적인 충당금 적립 기조를 감안할 때 올해 관련 평가손실규모 및 충당금이 손익에 미칠 영향은 지난해 대비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히려 애널리스트들은 실적발표를 계기로 미래에셋증권, 한국금융지주(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키움증권, NH투자증권, 메리츠금융지주(메리츠증권) 등 증권주들의 목표주가를 줄상향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증권주 목표주가 상향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주주환원 강화와 금리 인하에 따른 부동산 부실 완화 가능성, 브로커리지 활성화 등이다.

증권주 역시 대표적인 저PBR 종목으로서 정부가 내놓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만 하더라도 올해 상반기 중으로 새로운 중기 주주환원정책을 공시할 예정이며 기존 대비 더욱 주주친화적인 주주환원정책이 제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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