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철도 지하화’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철도 지하화 계획은 선거철만 되면 나오는 단골 공약이다. 하지만 사업성 문제로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에도 공약만 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선심성 공약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교통 분야 민생토론회를 통해 65조2000억원을 투입해 철도와 도로를 지하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31일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 4호 공약으로 경기 수원 등 일부 구도심 철도 지하화를 발표했다. 일주일 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철도지하화통합개발 종합계획 용역을 발주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며 손발을 맞췄다.

야당은 한술 더 떠 지하철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포함한 전국 철도의 ‘예외 없는’ 지하화를 선언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일 신도림역을 찾아 전국 도심 철도를 지하화하는 공약을 발표했다. 수도권은 물론 부산·대전·대구·호남 철도와 도시철도 2·3·4·7·8호선 등 지역 구분 없이 도심을 지나는 지상 철도를 모두 지하화하겠다는 것이다. 투입 예산 규모만 80조원에 달한다.

여야 모두 국가 재정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간 사업자가 우선 지하화 사업을 진행한 후 상부 개발이익으로 이를 회수하는 식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다만 민간 사업자가 참여할지 의문이다. 사업성 확보가 쉽지 않아서다. 철도를 지하화해 생기는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선 지하화의 재원을 개발이익으로 충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연스레 지가가 낮은 지역은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한 철도부지는 대부분 좁고 긴 선형으로 돼 있다. 앞서 큰 부지를 바탕으로 추진된 서울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조차 장기간 표류 끝에 무산됐는데 선형인 철도부지는 수익성이 더 낮을 수밖에 없다. 또한 철도 주변에 이미 주택과 건물 등이 밀집한 곳이 많아 이들을 수용해서 대규모 개발을 추진하기 쉽지 않다. 여야 주장처럼 모든 지역에서 민간 투자를 일으켜 추진할 수 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철도 지하화 계획이 나온 곳은 여야 모두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둬야 하는 지역들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동안 철도 지하화 계획이 무산되는 사례들을 숱하게 봐왔다.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남발한다면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 키울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혼란도 가중될 것이다. 공약이 진심이고 표심을 얻고 싶다면 체계적인 계획과 구체적인 내용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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