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과학자가 만든 유기농 생리대
“여성 삶 전반의 불편함 직접 해결”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과거 생리대 파동 이후 국내 여성 소비자들 사이에선 파장이 일었다. 이너시아는 시중 판매하는 생리대와 구조부터 차이를 뒀다. 생리대 파동 이후에도 수년간 변하지 않는 현실과 직면한 김효이 대표는 “내가 겪는 불편함을 누군가 해결해주길 기다리기보다 직접 바꾸고 싶었다”고 했다. 여성 삶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을 직접 해결하고자 유기농 생리대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여성 과학자’들이 직접 만든 이너시아 유기농 생리대는 와디즈 펀딩에서 목표금액 2만207%를 달성하며 생리대 부문 역대 펀딩 금액 1위를 기록했다. 이너시아 생리대 구매율도 매달 두 배가량 늘어나고 있다. 시사저널e는 지난 16일 서울창업센터 동작에서 김 대표와 만나 이너시아에 대해 인터뷰했다.
과학자를 꿈꾸다 생리대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카이스트에서 의료 인공지능(AI)을 연구했다. 카이스트에서 연구하면서 목표하던 과학자에는 가까워졌지만 ‘실제 우리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했는가’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없다고 느꼈다. 세계적인 학회에서 의료 AI에 대해 발표도 했지만, 그 연구들은 당장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연구’ 그리고 ‘생활에 적용하는 것’ 그 사이 간극에서 갈증을 느꼈다. 그 갈증을 동일하게 느끼던 4명과 이너시아를 2021년부터 시작하게 됐다.
사명 ‘이너시아’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이너시아는 ‘관성(Inertia)’이라는 뜻이다. 물리학에서 뉴턴 제1법칙이 관성의 법칙이다. 무거운 물체는 관성이 커서 오랜 시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사회에서도 문제가 크고 중요할수록 관성이 커서 오랜시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이 관성을 깨고 새로운, 좋은 관성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사명을 ‘이너시아’로 짓게 됐다. 더 나아가서 여성들이 생리대를 관성으로 많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많은 여성용품 중에서 왜 굳이 생리대였나
여성이라면 생리는 누구나 공감, 겪어야 할 문제다. 우스갯소리로 “생리가 해결된다면 그게 바로 노벨상감”이라는 말도 한다. 남이 해결해 주는 것을 바라기보단 직접 해결하자는 생각에서 생리대를 택하게 됐다. 나름 생리대를 꼼꼼하게 고르는 소비자라고 스스로 생각해왔는데, 실제 연구해보니 다소 놀랄 만한 요소가 많았다. 순면 커버를 사용했다고 유기농 생리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비자였을 때는 “순면 커버니까 피부 트러블이 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생리대에 들어있는 미세 플라스틱을 없애겠다는 목표로 이너시아 생리대를 시작하게 됐다.
기존에도 유기농 생리대는 많은데, 이너시아 차별점은?
시중 판매하는 유기농 생리대들은 커버만 유기농 순면인 경우가 많다. 그 안에는 화학물이 들어가거나, 또는 면을 쓰더라도 일반 순면을 쓰는 경우가 많다. 결국 가격, 흡수력 때문이다. 이너시아 생리대는 속까지 모두 100% 유기농 생리대다. 유기농 순면을 사용하고 자체 개발한 라보셀이 들어있어 흡수력을 잡아준다. 라보셀은 기존 생리대가 흡수체 10을 사용했다면, 라보셀은 1만 넣어도 동일한 흡수력을 지닌다. 라보셀은 식물성 원료를 기반으로 제조된 소재로, 기존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 대비 뛰어난 혈액 흡수력과 생체 적합성을 자랑한다.
라보셀 연구개발 과정에 대해서도 소개해달라
라보셀은 우선 수술실 지혈 소재에서 착안, 피 흡수에 초점을 맞췄다. 시중 판매하는 생리대들은 물 흡수로 연구한다. 이너시아는 도축장에서 버려지는 동물 피를 구매하고 직접 뿌려보면서 실험했다. 실험 과정만 1년이 걸렸다. 처음에 수술실 지혈 소재에서 착안해 생리대에 적용할 때, 그 과정에서 샘플을 300개 이상 만들었다. 샘플에 다 피를 뿌려보면서 가장 최적의 생리대를 만들고자 했고, 만들어진 생리대를 며칠 동안 착용하기도 했다. 이후 만족스러운 샘플이 만들어졌을 때 양산하고 사업화하는 작업을 했다. 공동 창업자들끼리 같이 살면서 1년여 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생리대를 출시하게 됐다.
연구 초반, 초기 투자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처음에는 다 사비로 충당했다. 법인 설립 전까지는 대학생 때 알바하면서 모았던 돈으로 충당했다. 당시에는 연구실에서 쓰는 정밀 저울(약 100만~200만원)을 살 돈이 없어서 옆 연구실 분들에게 빌려서 사용했다. 연구실 사람들이 다 퇴근했을 때 몰래 쓰기도 했다. 당시 학과 공용 연구실을 몰래 쓰다가 교수님들에게 들키기도 했다. 다행히도 교수님들이 응원해주셔서 이너시아가 탄생하게 됐다. 생리대 출시까지는 약 10억원이 투입됐다.
이너시아 제품 라인업은 어떻게 되는지
일단 생리대는 패드형으로 중형, 오버나이트 등 크기별로 있고 이 외에 여성 청결제나 와이존을 케어할 수 있는 제품들을 연구하고 있다. 올해 출시 계획이 있는 제품들은 여성 건강을 케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너시아 생리대가 시중 제품들보다 비싸던데
원가 자체가 높다. 좋은 재료들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저희끼리는 “원가만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수준 생리대”라고 할 정도다. 원가를 낮추고 싶은 욕심은 있다.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이 아니라면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삶에 있어 불편함이 있으면 해결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이기도 하다. 지금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주로 판매하고 있다. 온라인에선 이너시아 자사몰 판매율이 가장 높다. 고객 연령층은 35~55세 여성들이다.
저희는 ‘여성계 다이슨’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이슨도 처음에는 ‘굳이 머리를 비싼 기계로 말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지만 지금은 아주 일상적인 부분을 혁신적으로 바꾼 제품으로 분류된다. 이너시아 역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일반 그리고 유기농 생리대 효과 차이는?
생리대 파동 이후 대기업에서는 당시 문제가 됐던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를 모두 제거했다.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는 흰색 가루고, 석유 화학물의 부산물이다. 그런데 제거라는 것이 미세 플라스틱 흡수를 제거하는 대신에 무언가를 첨가한 것이 아니라 그냥 제거만 했다. 아기 기저귀에서는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던 이 흡수체가 생리대에서 이슈됐다는 이유로 제거된 것이다. 그때 문제가 됐던 생리대들을 사용하면서 소비자들도 불편하다고 느끼게 된 이유다. 생리대 파동 이후 중소기업 점유율이 높아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점유율이 높아진 중소기업 생리대들은 거의 다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가 들어가있다. 유기농 순면 커버를 쓰면서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가 들어가게된 셈이다. 사용성 측면에서는 흡수력이 좋다는 느낌은 받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 생리대와는 큰 차이가 없게 된 것이다.
해외 유기농 생리대 시장은 어떤지
업계에선 ‘우리나라의 유기농 생리대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주장한다. 2017년 생리대 파동 이후 유기농 생리대 비율이 크게 늘었다. 순면 생리대 중에서는 ‘유기농 생리대가 아닌 것이 얼마나 되냐’ 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미국을 예로 들면, 탐폰(tampon)이 메인 시장이여서 패드의 기술력 자체가 높지 않다. 오히려 패드는 중국, 아시아권 기술력이 더 좋다. 순면이나 제지 산업 등 아시아권이 더 발달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생리대가 제품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내부적으로 국내 생리대 시장에 대해서 어떻게 보나
생리대라는 것은 거의 다 비슷한 공정과 재료를 통해 만들어진다. 생리대 판매자위탁생산(OEM) 공장들이 획일화돼있고, 사용하는 재료들도 동일한 편이다. 기본적으로 식약처에서 안전성을 인정한 제조 방법과 공정을 이용해서 시작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불안하게 생각하면서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는 좀 더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기존 생리대들이 획일화돼있다보니, 즉 마케팅적인 용어에만 치중돼 선택하게 되고 어떤 기능적인 차이나 구조적인 차이를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시장 자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해외 진출도 생각하고 있는지
아마존 본사의 지원을 받아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하고 있다. 사실 내부 인력이 10명 내외여서 국내 사업만 하기도 빠듯하다. 해외는 국내가 자리잡은 시점에 본격적으로 진행하는게 맞지 않을까 기회를 보고 있다. 해외라고 굳이 한다면 아마존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미국에선 “비싸지만 좋은 제품”이라는 평가가 있다. 미국에선 장당 1000원정도 비싸다. 원가가 높고 배송, 물류비가 있어 가격이 높게 책정된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이너시아의 목표는
아직까지는 이너시아가 생리대 시장에서 100%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고객분들에게 경험을 시켜드리고 싶다. 와이존 케어에 있어서도 좋은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것이 올해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여성의 삶에 있어 많은 불편함들, 부가적으로 더해줬으면 하는 기능들을 누구보다 빨리,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펨테크(femtech) 기업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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