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불완전판매 등 금융권 잇단 사고···유명무실 내부통제제도 보완 필요성
담당자 지정·책임소재 명확화 법안 속도···“금융당국 영향력 강화 근거 미약”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회삿돈 횡령 등 모럴해저드로 인한 금융권 사고가 잇따르면서 형해화된 내부통제 규율을 손봐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여야가 임원급 담당자를 지정해 내부통제 사고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하는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면서 연내 입법이 가시화하는 모양새다. 금융권에선 법안 취지에 맞게 내부 시스템 정비에 나선 가운데 처벌을 두려워한 경영진이 혁신에 소극적일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은행 등 금융권에서 횡령, 불완전판매 같은 금융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BNK경남은행에서 1300억원대 횡령 사건이 터졌고, KB국민은행 직원들은 무상증자 등 고객사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27억원 규모의 주식매매 차익을 챙긴 것이 드러났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직원이 회삿돈 700억원을 빼돌린데 이어 올해는 잘못된 파생상품 평가로 1000억원에 가까운 평가손실을 냈다. 

DGB대구은행은 내부직원이 1500여명의 고객명의를 도용해 증권계좌를 불법 개설했단 의혹을 받고 있다. 롯데카드 직원들은 부실협력업체에 회삿돈을 지급한 뒤 일부를 빼돌리는 수법으로 100억원대 배임을 저질러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실제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로부터 보고받은 횡령·유용 사고 액수 추이를 보면 최근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2019년 111억원, 2020년 143억원, 2021년 228억원 수준을 보이다 지난해엔 897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8월까지 사고액이 626억원에 달한다.

이에 현행법상 금융사가 건전경영, 소비자보호 등을 위해 의무화된 내부통제 규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단 지적이 나온다. 내부통제는 다양한 위험 관리를 위해 임직원이 업무처리와 관련해 준수해야 할 일련의 절차를 말한다. 

금융사 지배구조법은 임직원 불법행위로 인한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금융사가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 내부통제 관리에 대해선 명확하게 규율하지 않아 임직원들에게 형식적 절차에 그치고 있단 비판이 제기된다.

/ 표=정승아 디자이너
/ 표=정승아 디자이너

이에 국회에서는 금융사 내부통제 규율을 명확히 해 내부사고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정안이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법안 소관 정무위원회에선 정부안을 담은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안과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두 법안 모두 금융사 내부통제의무 강화에 방점을 두고 있어 전체적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주요 내용은 금융사 대표이사가 내부통제기준 준수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 보완하고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토록 하며 이사회는 대표이사 점검, 보완 업무 집행을 감독토록 했다. 금융사는 업무영역별로 금융사고 방지조치를 담당할 관리책임자를 지정토록 하고 준법감시인과 위험관리책임자가 조사, 점검, 관리결과를 대표이사에 보고토록 했다. 

윤 의원안에는 금융사 내 각 책무에 대해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이행해야 할 임원을 지정한 문서인 책무구조도를 도입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금융사 임원 및 업무집행책임자가 내부통제기준 관련 의무를 준수해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됐다고 인정될 경우 제재조치를 감경, 면제하는 내용도 담았다. 전날 여야는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상임위 대안을 도출했고, 조만간 열릴 전체회의에서 의결에 나설 계획이다.

정무위 관계자는 “두 법안이 취지나 방향은 완전히 같고 실무적 차원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며 “책무구조도 관련 내용이 달랐는데 윤 의원안을 반영하는 것으로 소위를 통과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야 모두 은행 등 금융권 일탈을 주시하고 있어 연내 입법 전망도 밝단 설명이다. 

입법시 금융권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현행법상 내부통제 책임이 불분명해 발생하는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단 전망이 나온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지금은 내부통제를 해야한단 얘기만 있고 안 됐을 때 누구 책임인지가 없다”며 “책임소재가 명확해지면 담당자가 신경쓰게 된다. 지금은 그냥 한명이 OK하면 대출이 그냥 나갈 수 있었다면, 2~3명이 교차 점검을 해 대출이 실행되도록 하는게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다만, 법안이 통과되면 금융사고시 경영진이 처벌받게 된단 점에서 금융권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의 금융권 버전이라며 긴장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금융투자협회 측은 법안에 대해 “금융사 임원의 경영판단 상 위험회피성향이 강화돼 금융혁신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금융회사 관리조치의무가 강화된 반면 상응한 인센티브로 작영해야 하는 면책, 감경요건은 불명확해 상호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본다. 금융위원회나 금감원 입김이 강해지는게 아니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정무위 관계자는 “금융위나 금감원이 모든걸 다 관리하지 않으려고 하는게 내부통제다. 금융당국 영향력이 커진단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금융위가 금융권과 소통하면서 법안을 만들었기에 금융권이 이미 법적용 준비가 돼 있단 얘기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회사 입장에선 다른 민간기업에 없는 걸 계속 요구하니 억울한 면이 있겠지만 금융 특수성이란 게 있다”며 “업계에서 일단 사고가 나면 내부통제가 잘 안됐단 결과 책임으로 이어질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단 우려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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