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 여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장 퇴장 논란
청문회 제도 무력화 우려, 자료제출 등 보완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임명한 행정부 고위공직자가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갖췄는지 국회에서 검증하는 제도이다. 지난 2000년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시행된 이후 국민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올바른 공직사회를 만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단 긍정적 측면이 부각되면서 대상이 꾸준히 확대됐다. 2005년부턴 대통령이 임명한 전 국무위원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도상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현행법상 인사청문 대상 공직후보자 중 상당수는 청문 절차만 있을 뿐 국회의 임명동의를 필요로 하진 않는다. 즉, 국회가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판단을 내놓더라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제도 도입 초기엔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면 국민적 여론을 감안해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나, 최근엔 단순 통과의례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장관 인사청문회가 첫 도입된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의 임명 강행은 3건에 불과했으나, 이명박 정부(17건)·박근혜 정부(10건)·문재인 정부(34건) 등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17개월 만에 18번째 임명 강행을 기록하고 있다. 후보자도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등 ‘버티면 그만’이란 식으로 대응하면서 인사청문회를 통해 국무위원을 제대로 검증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인사청문회가 형해화하는 가운데 급기야 지난주엔 청문 대상 국무위원 후보자가 상임위원장의 제지에도 무단으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5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도중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김행 후보자를 겨냥해 사퇴를 거론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권인숙 여성가족위원장에 반발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 퇴장했다. 그런데 김 후보자도 이들을 따라 자리를 빠져나간 것이다. 인사청문회 권위가 추락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김 후보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여러 의혹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변인 시절 백지신탁을 피하기 위해 시누이에게 팔았다 되샀다는 주식파킹 의혹,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에 선정적 보도를 내도록 조장하고 그 대가로 코인을 받았단 의혹, 경영권 인수 과정에서 회삿돈을 지출했단 배임 의혹 등이 제기됐다. 만약,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도덕적 지탄을 넘어 위법 행위로 형사처벌까지도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모든 걸 해명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회의장에선 위원들의 자료제출 요구 상당 부분을 거절한 채 사실 확인이 어려운 주장을 되풀이했다. 김건희 여사와의 관계에 대한 질의엔 청문위원 발언을 자르며 언쟁을 벌였고, 법원 판결문 속 약정서를 근거로 제기된 배임 의혹에 대해선 반박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고발하라”며 맞받았다. 그리고 김 후보자는 본인 말대로 ‘드라마틱 하게 엑시트(퇴장)’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정쟁이 과열되다 청문위원들이 퇴장한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공직 후보자가 무단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간 것은 전례가 없다. 이른바 김 후보자의 기괴한 행동으로 인해 인사청문회는 더욱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처했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다시 돌아볼 시점이 됐다. 당장 시급한 것은 김행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인사청문을 거부할 제2, 제3의 후보자가 발생할 수 있단 점이다. 공직 후보자가 청문회를 거부했을 때 조치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또 국무위원 후보자 검증을 제대로 하기 위해 후보자의 자료제출 의무도 강화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자료제출을 거부할 경우 처벌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국회는 보완책 마련에 속도를 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