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미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 연합이 이뤄지고,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해소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중소기업들이 일본과 교류와 협의를 통해 기술을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일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55세)는 “우리나라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이 많이 올라온 것은 사실이나, 아직 일본을 따라갈 수는 없는 수준”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고려대 MBA, 서강대 경제학 박사를 거쳐 LG전자, 현대증권, 한국경제신문사, 국회 4급 정책보좌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한국경영경제연구소 소장과 한국시장경제연구회 회장 등을 맡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무역연구원·한국글로벌무역학회(KAGBT) 등이 개최하는 무역학 통합 세계학술대회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수출 확대 전략’을 주제로 발표하는 등 국내 반도체 부품소재산업의 육성방안 등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 교수는 한·미·일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중 반도체 제재 동맹이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과의 관계 회복으로 공급망 협력이 확대되면 기술·인적 교류도 활발히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소부장 기업들은 지난 2019년 일본의 반도체 핵심 부품 수출 규제 이후 의존도가 높았던 일부 품목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일본과의 기술 격차는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교수는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소부장 중심으로 전환된 이후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우리 기업도 자체 육성을 통한 일부 소재 및 장비 국산화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만큼의 고순도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민간 투자 300조원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이런 교류의 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석열 대통령은 발표 당시 한·일 양국 기업 간 공급망 협력이 가시화되면 용인에 조성할 예정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일본의 기술력 있는 반도체 소부장 업체들을 대거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교수는 “용인 클러스터에는 한국의 핵심 소부장 기업들과 일본의 우수 기업들이 같이 들어오게 된다”라며, “우리가 일본 기업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배우면서 중소기업도 일본 수준 이상의 기술력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지는 김 교수와 함께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대중 반도체 제재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봤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최근 미국의 중국 제재 수위를 예년과 비교해달라
제재 수위가 많이 높아졌다. 얼마 전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 세부 규정을 확정하고,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 증설을 10년간 5% 이하까지만 허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화웨이 최신 스마트폰에서 7나노 반도체가 나온 이후로는 미국이 16나노 이하로 시스템 반도체 칩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등 수출 통제를 더 강화하는 모습이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제재 강도를 더 높이는 이유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 GDP의 70%까지 따라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약 22조달러, 중국이 16조달러 수준이다. 미국은 중국이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삼성전자에 지원하는 돈이 중국에 도움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5% 증설허용으로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은 각각 35조원, 합치면 70조원가량을 중국에 투자한 상황이다. 우리 기업의 단일 공장 중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설 역시 삼성전자의 중국 공장으로, 시안에 있다.
과거 롯데와 신세계가 중국에 투자했다가 알거지가 돼서 나왔던 경험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중국에서 이제는 빠져나와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최대한 협의를 통해 혜안을 찾아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제재 영향권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는 분석들도 있는데 안심해도 되는 상황인지
중국은 인구가 14억명에, 1인당 국민 소득은 1만달러(1350만원)를 넘어섰다. 인도가 미국의 인구를 넘어서면서 주목받았지만, 구매력에 있어 중국을 따라갈 수가 없다.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도 중국 투자를 계속하겠다고 할 만큼 중국은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나라도 중국이 구매를 안 해주니까 바로 무역 적자가 났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수출의 20%가 반도체고, 반도체 수출의 60%가 중국이다. 지금까지 한국경제에 있어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는데, 현재 중국은 미국의 제재와 함께 내부적으로 부동산 위기가 맞물리는 등 매우 어려워진 상황이다. 최대한 중국과의 교역을 유지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 중동 쪽으로 무역 국가를 다변화해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우리가 살길이다.
-일본도 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특히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인데
반도체는 원천 기술의 70%를 미국이 갖고 있고, 반도체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영역은 일본이 공급한다. 한국과 대만이 실제 생산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렇게 이어지는 공급망 연합이 아주 중요하다.
일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시장경제 진영의 국가들이 우방국이다. 미국과 뜻을 같이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일본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이 너무 거대하게 크는 것을 우려한다. 중국이 크게 성장해 아시아의 맹주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한·일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도 일본은 우리나라에 폴리아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등 반도체 3개 부품 공급을 중단시킨 바 있다. 이때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중국 제재가 강화되고, 일본이 적극 동참하고 나선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위치에 놓여 있나
한국은 메모리 시장을 80% 독점하고 있고, 비메모리는 17% 정도 된다. 실질적으로 메모리 반도체로 먹고살았던 건데, 현재 70조원을 투자해놓은 상태에서 당장 중국에서 발을 뺄 수는 없다고 본다.
미국에 대해서는 최대한 미국의 뜻에 동조하고 같이 갈 것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현재 우리 기업이 놓여 있는 처지와 향후 계획을 충분히 설명하며 설득해야 한다. 중국에서 생산되거나 공급하는 반도체는 모두 산업용이지, 미국에 위협이 되는 무기 전용이라던가, 인공지능(AI) 반도체·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반도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안심시켜야 한다.
중국에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 80%가 문을 닫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자체 자동차를 조립하고 생산할 능력이 되자, 현지에서 현대차 불매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처럼 중국은 한국에서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하면 다 쫓아내 버린다. 반도체와 전기차를 포함해 모든 산업에서 중국 ‘굴기(으뜸)’, 즉 최고가 되고자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한국 또한 중국에 아주 중요한 파트너다. 중국이 미국에 직접 수출하면 25%의 관세가 붙지만, 한국을 통해 수출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껴있어서 무관세다. 중국도 한국을 교역의 파트너로 계속 유지해야만 하며, 한국을 달래야 하는 처지다. 이와 관련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년 방한을 계획 중이다.
우리는 이런 점을 이용해 밀고 당기기를 잘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선 미국과 우호 관계를 잘 이어가면서도 당장 중국과 너무 멀어지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중국의 기술·인력 탈취 등 문제도 심각하다.
사실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우리도 일본에서 기술을 다 배워왔다.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술을 우리가 가져왔고, 또 중국이 한국 인력에 2~3배 임금을 올려주고 기술을 빼갔다. 이런 문제 때문에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들은 퇴직한 임원에게 다른 곳에 취업하지 못하는 조건으로 2년치 월급을 주는 등 방법을 쓰기도 한다.
더 철저한 보안을 위해 기업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관리도 중요할 것이다. 결국 사람의 머리 안에 있는 것을 빼 갈 수는 없으므로 인력이 유출되는 것을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다. 기업들은 직원들의 대우와 관련해 어떤 불이익이나 불만이 없도록 인사관리에 대한 투자가 중요할 것이고, 정부도 기업 간의 이익 관점을 넘어 국가 보안 차원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교육하거나 관련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가진 건 결국 인재밖에 없다. 정부도 다급하다. 수도권의 모든 대학이 반도체 학과를 신설할 수 있도록 허용해줬으며, 올해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학과 정원이 20년만에 늘었다. 세종대도 작년에 반도체학과를 만들었다. 용인에 그린벨트를 풀어서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한 것도 지방 근무를 꺼리는 인력들을 위한 것이다. 실제 용인 클러스터 발표 이후 반도체 전공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해야할 역할은 무엇이가
우리나라는 무역의존도가 75%로 세계 2등이고, 국가별 수출 비중은 중국이 26%, 미국 15%, 홍콩 7% 등에 달한다. 중국과 홍콩을 합치면 33% 수준이다. 중국 경제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 무역 적자가 16개월째 지속되는 것이다.
수출국을 다양하게 가져가야 한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장기적으로 절반 정도도 줄여야 한다. 그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이다. 한국은 현재 전 세계 대부분 나라와 FTA를 맺었지만,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는 아직이다. 우리도 한·중 FTA를 체결하기 전까지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10%도 되지 않았다. 현시점에서 올바른 방향의 무역 확대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기업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면 법인세 개선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법인세가 현재 26%이며, 미국과 OECD 평균이 21%, 싱가포르는 17% 수준이다. 우리 기업이 다 해외로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도체가 성장하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어려워진다. 다행히도 메모리반도체와 HBM 등 한국 반도체 수출이 다시 증가하고 있으며, 2024년 한국경제는 올해보다 대외 수출이 증가하면서 성장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