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 육박 고금리 정기예금 만기 도래
증시 불황에 투자처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 증가
금융권 수신 경쟁 가열 조짐···우리은행, 'WON 플러스 예금' 연 최고 4.05% 금리 제공
은행채 등 시중은행 자금조달 방법 다양···연 5%대 정기예금 상품 등장은 어렵다는 전망도

4대 시중은행 정기예금 상품(6일 기준)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100조원에 달하는 고금리 정기예금 만기가 다가오면서 4대 시중은행 주요 정기예금 금리가 4%대로 올라섰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 늘고 금융권 수신 경쟁이 가열될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정기예금 최고금리 상품에 대한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6일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12개월 만기 주요 정기예금 금리는 연 4.00∼4.05%로 나타났다. 5대 은행 예금 금리는 한 달 전(연 3.65∼3.70%)보다 0.35%포인트 상승했다.

금융권이 예금 금리를 올리는 배경에는 100조원에 달하는 고금리 상품의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앞서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은행채를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경쟁적으로 수신 금리를 높여 자금을 확보했다. 지난해 7월 연 2.93%였던 예금은행 평균 수신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인 지난해 10~12월에 연 4%를 웃돌기도 했다. 안전한 은행의 예금 금리가 오르자 고객들은 은행에 돈을 많이 맡겼다. 지난해 6월 1927조5169억원 수준이던 예금은행 원화예금 잔액은 같은 해 11월 1973조1725억원으로 네 달 새 50조원 가량 불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지난달 말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을 포함한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NH농협은행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08조1349억원으로 전월(597조9651억원) 대비 10조1698억원 급증했다. 통상 정기예금 만기가 끝나면 자동해지(신청시)가 돼 요구불예금 계좌로 이동한다. 이들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7월(-23조4239억 원), 8월(-2조4841억 원) 두 달 연속 감소하다가 3개월 만에 증가세로 전환했다. 요구불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워 언제든 예·적금은 물론이고 주식, 부동산 같은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대기성 자금의 성격을 지닌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미국발 고금리 충격에 증시가 출렁이고 있는 만큼 주식 등 위험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머니무브 현상에 제동이 걸렸다는 판단이다. 지난 4일 6일간의 추석 연휴 뒤 개장한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2.41%, 4% 급락했다. 코스피가 2% 넘게 하락한 것은 지난 3월 이후 7개월만이다. 고금리 장기화 우려로 세계 채권 금리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지난 3일(현지시간) 4.8%를 넘으며 16년만에 최고치를 경신한 여파다.

요구불예금이 증가한 가운데 앞으로 정기예금 상품 금리가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일단 지켜보고 관망해 보자는 분위기와 함께 시장에서는 최고금리 상품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6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 중 정기예금 금리가 가장 높은 금융상품은 우리은행의 'WON 플러스 예금'이다. 최고 연 4.05% 금리를 제공한다. 이어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이 연 4.03%, KB국민은행의 'KB Star 정기예금'과 하나은행의 '하나의 정기예금'이 각각 연 4% 금리를 제공한다. 

일각에서는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연 4%를 돌파했지만 5%대 예금이 등장하기에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하반기와 달리 은행들이 은행채 발행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과도한 수신경쟁을 막기 위해 은행채 발행 한도를 폐지하기로 한 바 있다.

고금리 정기예금 재유치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모니터링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임원회의에서 국내외 금융시장 상황과 관련해 시장 불안요인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요구하며 금융사의 고금리 자금조달 경쟁에 대한 감독을 주문한 바 있다. 이 원장은 "그 동안 사전적 유동성 확보 및 만기분산 유도 등을 통해 유동성 위험이 상당히 개선된 상태이나 심각한 위기 상황을 가정한 스트레스테스트를 통해 자금수급계획을 재점검하고 자산경쟁 차원의 고금리 자금조달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는 은행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예금보다 은행에 유리하다"며 "지난해만큼 예금금리를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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