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금융소비자 위해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주장
업권별로 자금 흐름 또는 예보료율 등 많은 변수와 이해관계 복잡
합의점 도출 어려워···실익 중심 셈법 우선시 및 예보료 인상 부담 관건
부동산 PF 연체율 높은 상황서 일부 저축은행으로의 머니무브 현상 우려도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1인당 예금자보호한도 5000만원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한 가운데 업권 간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금융 소비자를 위해 현행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금융권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업권별로 자금 흐름이나 예금보험료율 등 많은 변수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사안인 만큼 합의점 도출이 쉽지 않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금융사별로 실익 중심의 셈법이 우선시 되는데다 대형 금융사와 중소형 금융사의 규모 차이에서 비롯된 예금보험료율 인상 부담이 관건으로 보인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는 지난달 21일 최종 회의에서 현행 유지, 단계적 상향, 일부 예금에 별도 한도 적용 등 시나리오를 두고 논의한 결과 현행 유지 쪽으로 잠정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예금자보호한도는 예금자보호제도에 따라 금융사가 영업정지나 파산 등으로 예금자에게 예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됐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금융사 대신 지급해주는 최대 한도다. 국내에서는 지난 1995년 예금자보호법이 제정되며 처음 예금자보호제도가 도입됐다. IMF 사태 이후 2000만원으로 정해졌던 예금자보호한도는 지난 2001년 5000만원으로 한 차례 상향됐으나 23년째 5000만원이 유지되고 있다.
현행 유지라는 정부의 잠정 결론을 놓고 관련 업권에서는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달리 정치권에서는 예금자보호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여야를 막론하고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하는 방향의 예금자보호법 일부개정안이 21대 국회에만 11개가 발의됐다. 이 중 8개 법안이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6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대 2억원까지 예금자보호한도를 늘릴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하며 "예금자는 금융비용 감소와 예금액의 안정성이 높아지는 편익을 얻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금융시스템 취약성이 개선되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새마을금고 부실 우려 사태를 계기로 대규모 자금 이탈세가 나타나면서 상향해야 한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할 경우 위기 때 급하게 빼내야 할 자금 규모가 줄고 이는 금융 시스템 안정성 및 시장 불안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취지다.
하지만 업권의 판단은 달랐다. 업권별로는 물론 같은 업권 내에서도 각각의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습이다. 한국금융학회에 따르면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확대한다면 저축은행 예금이 최대 40%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대형 저축은행의 경우 저축은행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 개선 등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긍정적 기대와 달리 중소형 저축은행은 예금보험료율 인상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예금보험료란 은행,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가 예금보험기금 조성을 위해 예금보험공사에 지불해야 하는 돈이다. 예금자보호한도를 올리면 예보료율도 인상된다. 특히 중소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예금자보호한도가 높아져도 대형 저축은행에 비해 고객군이 몰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예상하면 결국 예보료율만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중은행들도 예금자보호한도 상승에 대해 달갑지 않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예보료율 상승은 물론 대형 저축은행으로 머니무브(자금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실익이 없다는 계산이다.
기존 예금자보호한도 5000만원 현행 유지라는 잠정 결론을 놓고 업계의 반응 역시 제각각이다. 정치권과 대형 저축은행은 기대했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늬만 혁신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지만 업권 내에서는 부담을 덜었다는 표정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도 상향 논의가 시작됐을 때와 경제상황과 금융환경 등이 많이 달라졌다"며 "이번 정부의 잠정 결정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체율이 높은 상황에서 일부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으로의 쏠림 현상이 자칫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