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사업자, 6개월 협의 후 지난 3월 가이드라인 도출
현대홈쇼핑, 송출수수료 협상 2개월 남기고 일방 종료 발표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홈쇼핑사업자 현대홈쇼핑이 ‘홈쇼핑 송출 수수료’ 계약 체결 협상 중 유료방송사업자 KT스카이라이프의 송출 중단(블랙아웃)을 예고했다. 현대홈쇼핑은 이 과정에서 정부와 사업자들이 협의해 지난 3월 도출한 ‘홈쇼핑 방송채널 사용계약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나 시청자를 볼모로 한 힘겨루기에 나섰단 비판이 나온다. 협상이 최종 결렬되기 전 송출 중단을 통보한 것은 부적절하단 주장이 나온다. 정부는 ‘대가검증협의체’를 가동해 성실협의 원칙과 불리한 송출대가 강요 금지 등 가이드라인을 준수했는지 여부를 따질 방침이다. 다만 정부 중재에도 협상 결렬, 법적 공방 비화 가능성은 남아있다.
22일 방송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20일부터 KT스카이라이프를 통한 현대홈쇼핑 방송 송출이 중단될 전망이다. 지난 3월부터 KT스카이라이프와 홈쇼핑 송출 수수료 협상을 벌여 온 현대홈쇼핑이 협상 도중 일방적인 송출 중단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향후 수수료 협상이 진전이 없으면, KT스카이라이프 시청자들은 다음달 20일부터 현대홈쇼핑 채널을 볼 수 없게 된다.
◇ 11월까지 협상 예정 중 현대홈쇼핑 사실상 ‘협상결렬’ 발표
현대홈쇼핑이 이같은 강수를 둔 것은 수익성이 악화하는 가운데 유료방송사업자들이 요구하는 송출 수수료를 부담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서 롯데홈쇼핑도 다음달 1일부터 케이블TV 사업자인 딜라이브 강남 케이블TV 방송 송출을 중단하겠다고 결정한 바 있다.
문제는 현대홈쇼핑이 지난 3월 정부와 사업자 간 협의해 도출한 ‘홈쇼핑 방송채널 사용계약 가이드라인’을 위반해 일방적인 송출 중단을 통보했단 점이다.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TV홈쇼핑사업자, 데이터홈쇼핑사업자, 인터넷멀미디어방송사업자, 위성방송사업자, 종합유선방송사업자 등은 지난해 9월부터 수차례 의견수렴을 거쳐 지난 3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대가산정 기준은 기존 ‘유료방송사가 마련하고, 홈쇼핑사에 통지’하는 방식에서 ‘유료방송사가 마련하고, 홈쇼핑사와 협의’하는 방식으로 개정됐다. 특히 협의 기간은 기존 ‘계약종료일로부터 180일’에서 ‘계약종료일로부터 5개월(기본협의)+최대 3개월(추가협의)’로 변경됐다.
즉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보면 현대홈쇼핑과 KT스카이라이프의 송출 수수료 협상 기간은 오는 11월 15일까지임에도 현대홈쇼핑이 협상 도중 일방적인 송출 중단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는 가이드라인 중 ‘정당한 사유 없이 진행 중인 협의를 중단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료방송업계에서 “시청자들을 볼모로 삼는 비정상적인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용희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가이드라인이 법적인 구속력이 없긴 하지만 정부가 성의를 가지고 제도를 만들었는데, 현대홈쇼핑이 절차가 종결돼 ‘벼량끝’처럼 종료하겠다고 던지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유도한 것”이라며 “인하하라고 던진 쪽은 손해 볼 게 없는 반면, 덜 받는 쪽에선 수익이 감소하는 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좀 더 과학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완벽히 협상이 결렬된 뒤 부득이하게 송출 중단을 하겠단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지, 협상이 안 되고 있단 이유로 그냥 끊어버리겠다고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료방송사업자의 매체력이 낮아졌으니 동결 내지는 할인해줘야 하지 않냐는 부분에 대해선 양사가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현대홈쇼핑이) 분쟁을 너무 빠르게 중단하려는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 대가산정 기준 되는 ‘홈쇼핑취급고’ 데이터 신뢰성 지적도
아울러 유료방송사업자와 홈쇼핑사 간 ‘데이터 불균형’으로 인해 홈쇼핑사가 주장하는 송출 수수료 요구안의 적정성을 제대로 검토하기에 한계가 있단 지적도 나온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홈쇼핑 송출 수수료는 ‘방송상품 판매총액의 증감’과 ‘유료방송 가입자수 증감’, 모바일·인터넷에서 판매된 방송상품 판매총액, 시청데이터 등 홈쇼핑 방송과 관련 요소의 증감‘을 고려해 결정한다. 이 중 유료방송 가입자수는 정부가 발표하는 가입자수를 근거로 하는 반면, 방송상품 판매총액은 홈쇼핑사에서 제시한 ’홈쇼핑 취급고(상품판매 총액) 증감률‘에만 의존하는 상황이다.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송출 수수료가 비싸다고 하는데, 순수하게 리모컨을 통해 구매하는 사람만 제시하고 있지, 방송 중 휴대폰 QR코드를 통해 발생한 판매에 대한 데이터는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가입자수가 적다고 한다”며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재산상황 공표집을 만들기 위해 매반기 과기정통부의 검증 및 전문가 심의를 거쳐 유료방송가입자수 산정결과를 공개하지 않냐”고 했다.
김 교수도 “모바일쪽 매출이 늘고, 방송쪽 매출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도 효과성 검증이 어렵다. 실시간으로 방송이 송출될 때 모바일 매출 변화를 이제는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며 “과기정통부의 대가산정협의체나 방통위의 분쟁조정위원회에 넘어가더라도 홈쇼핑사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과연 어떻게 검증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렇게 따로따로 얘기하지 말고 사업자들을 한곳에 모아서 균형점을 찾지 않으면 공멸할 것 같다”며 “거래대가를 조사하고 연구할 상설부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도 결국 제작사와 분쟁이 터질 텐데, 플랫폼과 콘텐츠 간 기여도 등에 대한 평가 방안 등이 강요될 수밖에 없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정책 수요에 대한 대응이 부족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과기정통부는 조만간 대가검증협의체를 운영해 사업자 간 갈등 해결에 나설 예정이다. 사업자들이 성실협의 원칙, 불리한 송출대가 강요 금지 등 가이드라인을 준수했는지와 대가산정 협상 요소 값이 적정한지 여부를 검증한다.
다만 정부 중재에도 송출 수수료 협의가 결렬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방통위 분쟁조정위원회 조정도 실패할 경우 양사의 갈등은 소송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