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임상재평가 이어 약제 상한금액 재평가 진행···최소한 중복 평가는 피해야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정부의 재평가 정책으로 인해 제약업계가 힘들어 하고 있다. 과거 수익이 많이 나고 영업이 활성화됐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최근 현실은 제약사 경영진이 ‘과연 제약업을 영위할 명분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상황이다. 기자도 느낄 정도이니 현장에서 일하는 경영진이나 일반 직원들 생각도 유사할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보건복지부가 진행하는 급여재평가는 지난 2020년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부터 어려움이 시작됐다. 올해의 경우 최대 관심이 집중됐던 히알루론산 점안제는 당초 예상보다 완화됐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적응증이 급여 삭제로 잠정 결정됐지만 처방량 제한 논의가 시작된 것이 최대 변수로 등장했다. 복지부가 히알루론산 점안제 급여 기준을 검토하는 것은 업계 차원에서는 심각하게 대응방안을 논의해야 하는 상황으로 판단된다. 내년엔 사르포그렐레이트 등 7개 성분 대상 급여재평가가 예정돼있어 첩첩산중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재평가는 제약사들에게 더욱 위협적이라는 판단이다. 실제 올 들어 옥시라세탐 제제와 세프테졸나트륨 제제에 이어 날록손염산염 주사제에 대한 임상재평가 결과가 해당 제약사 기준에서 실패한 것으로 귀결됐다. 여기에 스트렙토키나제와 스트렙토도르나제 대상 임상재평가는 결과가 사실상 확정됐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에 한창 재평가 작업이 진행 중인 콜린알포 제조사들까지 재평가 결과를 우려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급여재평가와 임상재평가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번에는 약제 상한금액 재평가도 시행됐다. 지난 2020년 7월 시행된 새 약가제도를 이미 등재된 제네릭(복제약)에 적용한 작업이다. 결국 이달 초순 7355개 제네릭 약가가 인하됐다. 이 글을 읽는 일반 독자들은 정부가 재평가 정책을 통해 임상적 유용성이 있는 약제는 대우하고 유용성이 불투명한 약제는 급여나 적응증을 삭제해 국민건강을 증진시키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제약 업종을 포함한 전체 산업계를 대상으로 정부는 해당 업계가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고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판단된다. 이런 차원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재평가가 특정 성분이나 업체를 대상으로 중복 진행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약사 기본 역할이 의약품을 생산하고 이를 의약사에게 영업하는 것인데 급여재평가와 임상재평가를 동시 받으면서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된다. 업계는 그동안 이같은 건의를 몇 차례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와 식약처는 원칙적으로 재평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약제 상한금액 재평가에 따른 약가인하로 제약사들은 분주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업체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해당 품목을 많이 보유한 제약사들은 일부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이에 오는 12월 경 정부가 기등재 의약품을 대상으로 2차 약가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며 제약업계는 정부만 쳐다보고 있다.
제약업은 사람 생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산업 육성보다는 규제를 위주로 한다는 정부 정책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제약업도 산업의 일종인데 복지부와 식약처가 협의해 재평가 대상이 중복되는 경우를 없애거나 줄이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약가인하를 단행할 때마다 혼란을 줄이기 위한 업무지침도 확정해 배포하면 현장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제약업계 불만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정부의 전향적 조치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