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KB금융지 회장으로 낙점
KB금융 'M&A 잔혹사' 끊어낸 주역
'현실안주' 않고 또 다른 도약 이끌까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양종희 KB금융지주 부회장이 차기 그룹 회장으로 내정됐다. 그룹 내 사실상 2인자였던 그는 LIG손해보험(현 KB손보) 인수를 주도하고 KB손보를 그룹 내 대표 비은행 계열사로 올려놓은 공을 높이 평가받았다. 양 내정자가 ‘1등 금융그룹’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KB를 진정한 ‘리딩금융’ 그룹으로 이끌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대표적인 ‘전략통’···윤종규 회장의 ‘믿을맨’
양 내정자는 1961년생으로 전주 출신이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서강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KB국민은행에 입행했으며 2008년 국민은행 서초역지점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지주 이사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이후 지주에서 경영관리부 부장과 전략기획부 부장을 맡았다.
윤종규 KB금융 회장과의 인연은 이때 시작됐다. 당시 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윤 전 회장은 전략기획부장으로 일하던 양 내정자의 능력을 윤 회장이 알아본 것이다. 양 내정자는 4년 뒤 전략기획 담당 상무로 승진하며 그룹 내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이름을 알렸다.
임원을 달고 나선 ‘고속승진’을 했다. 상무로 승진한 지 1년 만인 2015년 전무를 거치지 않고 지주 부사장에 바로 임명됐다. 금융권에선 상당히 파격적인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빠른 승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KB금융의 인수합병(M&A) 잔혹사를 끊어낸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양 내정자는 2014년 전략기획 담당 상무로서 LIG손해보험(현 KB손보) 인수 실무를 책임졌다. LIG손보를 인수하기는 쉽지 않았다. 고가 매입 논란이 이어졌으며 ‘KB사태’로 인해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의 퇴진하는 악재도 겹쳤다. 양 내정자는 임 전 회장의 퇴진으로 그룹 지휘봉을 잡은 윤 회장을 도와 전력을 다한 끝에 LIG손보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윤 회장의 '심복'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KB손보 고속성장 ‘기반’ 마련
이듬해 3월엔 KB손보 대표이사로 선임돼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회사를 이끌었다. 이 기간 그는 KB손보가 향후 그룹 내 대표 비은행 계열사로 올라서는데 있어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양 내정자는 단기 실적보다는 내재가치(EV)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 보험계약을 통해 장래에 거둘 수 있는 이익인 신계약가치를 늘리는 데 주력한 것이다. 그 결과 새 회계제도가 도입된 이후 KB손보가 더 가파른 성장 속도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서로 전혀 다른 ‘DNA’를 지닌 LIG손해보험과 KB금융지주의 화학적 결합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도 받는다.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 직원들이 KB손보로 이동하면서 조직 내 잡음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양 내정자가 소통에 앞장 선 것이다. 취임 첫날 KB손보 사옥 16개 층을 돌며 전 직원을 만났다. 그의 노력으로 조직 갈등은 많이 해소됐다.
KB손보를 잘 이끈 공을 인정받아 2020년 12월 KB금융 첫 부회장으로 낙점됐다. KB금융은 10년 만에 부회장직을 부활시켜 양 부회장을 글로벌 및 보험 총괄 부회장으로 임명했다. 부회장에 오른 이후 사실상 그룹 2인자로서 활약했다. 지난 3월 31일엔 '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 윤 회장을 대신해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등 금융당국과 금융지주 회장단이 한자리에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조찬 회의였다.
◇1등 금융그룹 ‘현실 안주’ 경계하고 끝없이 도전해야
양 내정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과거의 KB’와 얼마만큼 잘 싸워나갈 수 있느냐가 꼽힌다. KB금융은현재 국내 1등 금융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은행을 비롯해 증권, 카드, 생명보험, 손해보험, 자산운용사 등 금융업 전 부문을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다. 현재 상황만 잘 유지하면 당분간 별다른 위기 없이 국내 1등 금융그룹을 유지할 수 있다. 금융권에선 KB의 위기는 바로 이 지점에 있을지도 모른단 평가가 나온다.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KB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국내 금융권을 이끄는 그룹이 되기 위해선 다른 은행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디지털화를 매개로 금융업이 아닌 분야에 추가로 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2의 리브엠’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판은 깔렸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비은행 사업 진출에 대한 규제 완화를 적극 검토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부문도 과제다. 당장 인도네시아 법인 KB부코핀을 정상화하는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 KB부코핀은 KB가 인수한 후 줄곧 적자를 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KB가 글로벌 사업 핵심 지역으로 선정한 곳이다. 은행뿐만 아니라 증권, 손보, 카드 등 다른 계열사의 해외 법인도 모두 진출해 있다. KB는 인도네시아 현지에도 종합금융그룹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핵심인 KB부코핀이 이익을 내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