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행 이어 경남은행도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 중단
은행권 “정부 기조 맞춰서 내놨는데···가계부채 증가 주범 몰리니 난감”
오락가락 정책 방향에 소비자 혼란 초래 우려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금융당국이 최근 가계부채 주범으로 은행권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지목하면서 해당 상품을 취급하는 은행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당초 정부의 정책금융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 공급에 발맞춰 50년 만기 주담대를 내놨지만 금융당국의 뭇매를 맞자 해당 상품의 판매 방침을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2일 은행권에 따르면 BNK경남은행은 오는 28일부터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의 판매를 잠정 중단한다. 지난 14일부터 해당 상품을 취급한 이후 2주 만에 판매를 중단하는 셈이다. 경남은행 측은 연령대별 사용 목적과 소득 분포, 연령 제한 등을 검토한 뒤 판매 재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NH농협은행은 지난 7월 5일 출시한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인 ‘채움고정금리모기지론(50년 혼합형)’의 상품 판매를 이달 말 종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외에도 지난 1월 은행권 최초로 주담대 최장 만기를 50년으로 연장했던 Sh수협은행은 이달 말부터 가입 조건에 34세 이하로 연령 제한을 추가할 예정이며, DGB대구은행도 조만간 나이 제한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처럼 최근 은행들이 연이어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를 중단하거나 취급 제한을 두는 이유는 금융당국이 해당 상품을 가계부채 급증 원인으로 지목하면서다. 주담대 만기가 50년으로 늘어나면 만기가 길어지면서 매달 은행에 갚는 원리금이 줄어들게 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낮아지면서 대출한도가 늘어난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DSR 규제 우회 수단으로 활용해 가계부채 확대를 부추기고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지난 16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수출금융 종합지원 방안’ 간담회 자리에서 “새 정부 출범 이후 감소했던 가계부채가 최근 다시 상승하고 있다”며 “대출한도를 늘리기 위해 50년 만기 대출이 사용되거나 비대면 주담대에서 소득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같은 날 “은행들이 주담대 산정에서 DSR 관리가 적정했는지 실태점검을 할 예정”이라며 “40년·50년 주담대가 활성화되면서 실질 소득을 넘어서 DSR 모델이 만들어졌는지를 현장 점검해 하반기 가계대출 정책에 반영할지 챙겨볼 것”이라고 말했다.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은 당초 정부가 금리 인상기에 서민들의 내 집 마련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취지로 정책금융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을 도입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은행들은 이런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발맞춰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출시했는데 금융당국이 해당 상품을 가계대출 급증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은행권 관계자는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은 정부 주도로 특례보금자리론이 도입되면서 함께 등장했다”며 “금융소비자들의 이자 상환 부담을 낮추라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동참해 은행들도 주담대 상품의 만기를 50년으로 확대했는데 최근에는 50년 만기 주담대를 가계부채 증가의 주범인 것처럼 이야기하니 난감하다”고 말했다.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았던 만큼 혼란도 가중될 전망이다. 21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50년 만기 주담대 취급액은 2조4925억원, 취급건수는 9900건으로 집계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50년 만기 주담대의 판매를 중단하거나 연령 제한을 두려는 은행들이 나타나면서 대출 실행 가능 여부를 묻는 고객의 문의가 많이 늘었다”며 “은행 입장에서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면 그만이지만 주담대를 이용할 계획이었던 고객들의 혼란이 초래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4대 시중은행들은 50년 만기 상품의 판매 조건 변경 및 향후 판매 지속 여부를 놓고 내부 논의 중이다. 현재로서는 판매 중단보다는 금융당국이 향후 발표할 가이드라인에 맞춰 취급 조건을 변경하는 방향에 무게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