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BIS비율 급락···1조원 이상 환입 전망
시중은행, 당국 권고 따라 환입 거의 안할듯
"위험노출액은 산은이 더 많은데"···불만 나올듯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충당금 환입에 사실상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산업은행은 대규모 환입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돼 논란이다. 한국전력 적자로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점은 이해하지만, 한화오션의 잠재적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 곳은 산은이기에 당국의 권고를 똑같이 따라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에 한화오션 관련 여신 건전성 재분류와 충당금 환입을 결정하는 데 있어 다양한 요인을 검토할 것을 당부했다. 사실상 충당금 환입을 적게 하거나 아예 하지 말 것을 권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형 시중은행은 당국의 권고를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4대 시중은행의 한화오션 관련 충당금은 현재 약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1500억원으로 규모가 가장 크고, 우리은행 670억원, 신한은행 300억원 정도다. 대손충당금은 은행이 내준 대출채권 중 원리금을 받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을 미리 손실로 반영하는 비용 항목이다. 향후 문제가 된 대출채권의 등급이 올라가면 충당금은 환입돼 이익에 포함된다.
그런데 산은은 대규모 충당금 환입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전력이 적자를 입은 탓에 자본건전성이 크게 악화된 만큼 이익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산은이 한화오션에 대해 쌓은 충당금은 약 1조6000억원에 달한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해 9월 "현재 요주의 여신에서 정상 여신으로 분류되면 1조6000억원 대부분이 이익으로 환원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국책은행의 ‘마이웨이’ 행보가 이번에 또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화오션의 불안요인에 산은은 오히려 시중은행보다 더 많이 노출돼 있는데도 홀로 환입을 통해 대규모 이익을 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산은이 한화오션에 내준 여신(대출채권+선수금환급보증)만 해도 약 4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산은은 아직 한화오션의 전체 주식의 30% 넘게 가지고 있다.
물론 산은의 자본건전성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긴 하다. 산은의 올해 3월 말 기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13.11%로 금융당국의 권고치(13%)를 겨우 넘겼다. 하지만 BIS비율을 높이자고 충당금을 줄여 이익을 늘리는 것은 자칫 ‘아랫돌을 빼 윗돌에 괴는’ 셈이 될 수 있단 지적이다. 은행의 손실흡수력은 대손충당금 규모와 BIS비율 수준 두 가지로 결정된다.
특히 충당금 환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일부 시중은행들의 불만이 더 클 수 있단 관측도 나온다. 실적에 대한 부담이 덜한 은행들은 ‘차라리 잘됐다’는 반응을 보인다. 최근 은행권에 대한 ‘이자장사’ 비판이 많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충당금 환입으로 이익을 늘리면 오히려 은행 이미지에 더 좋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경쟁에서 밀려 실적 확대가 급한 은행들은 충당금 환입과 같은 ‘일회성 이익’이 절실한 입장이다.
지난 2017년 국내 은행들은 한화오션에 빌려준 대출의 등급을 부실등급인 ‘요주의’로 분류하고 대규모 충당금을 쌓았다. 당시 한화오션에서 분식회계 사태가 발생하고 업황도 악화되자 대출 원리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보고 충당금을 적립한 것이다. 당시 충당금 규모에 따라 실적 순위가 갈릴 정도로 시중은행은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한화오션은 지난 5월 산업은행의 관리에서 벗어나 한화그룹에 매각됐다. 이후 한화오션은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악화된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한국기업평가는 한화오션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등급 올렸다. 그러자 한화오션의 주채권은행인 산은이 대손충당금 환입 작업에 나섰고, 나머지 은행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일부 은행에선 상당히 적극적으로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은 신중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한화오션의 재무구조가 증자로 나아진 것은 맞지만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 판단근거다. 또 한국기업평가를 제외한 나머지 신용평가사들은 아직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비춰보면 충당금 환입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은 관계자는 “충당금 환입은 여신건전성 등급이 올라가면 자동으로 이뤄지게 돼 있다”라면서 “이번에도 기준에 맞으면 충당금 환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