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공모 지침 어긴 ‘희림 컨소시엄’ 설계사 선정 강행
서울시 “조합 투표 무효”···재공모 가능성 커져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전경 / 사진=연합뉴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전경 / 사진=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압구정 재건축 최대어’로 불리는 압구정3구역 재건축이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모양새다. 조합이 서울시의 공모 지침을 어긴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컨소시엄을 설계사로 선정하면서다. 서울시는 ‘설계사 재공모’를 언급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양측이 갈등 조짐을 보이며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압구정3구역 재건축 조합이 최근 희림종합건축사무소 컨소시엄을 설계사로 선정한 것에 대해 무효라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 15일 열린 총회에서 희림 컨소시엄은 1507표를 받아 경쟁사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컨소시엄(1069표)을 438표로 제치고 설계업체로 선정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모 자체가 실격 사유에 해당해 중단하라고 명령을 보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며 “결국 투표 자체가 무효이고 설계자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희림 컨소시엄의 설계안이 공모지침을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희림 컨소시엄은 조합에 용적률 360%의 설계안을 제출했다. 이는 서울시가 정한 신속통합기획의 상한 용적률 300%를 웃도는 것이다. 또 고층 설계가 들어서는 제3종일반주거지엔 임대가구를 배치하지 않아 공공성을 위한 ‘소셜믹스’(임대와 분양을 구분할 수 없도록 배치)를 지키지 않았다.

앞서 서울시는 압구정3구역의 신속통합기획 주민설명회에서 용적률 300% 이하와 임대주택 소셜믹스 등을 핵심으로 하는 신속통합 정비지원 계획안을 제시했다. 압구정3구역 조합이 공고한 재건축 설계 공모 운영기준에도 심사 시 실격 처리 대상에 위 용적률을 300% 이내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희림 컨소시엄은 인센티브를 적용하면 용적률 상향이 가능하다며 기존안을 고수해왔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 그래픽=시사저널e DB

급기야 서울시는 지난 11일 희림 컨소시엄을 사기미수 및 업무방해 및 입찰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서울시가 제시한 용적률 등에 부합하지 않는 설계안을 제시해 조합원과 주민 등을 현혹한 혐의다. 이어 14일엔 조합에 공모 절차를 중단하라고 시정 명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조합은 설계사 선정 투표를 강행하고 희림 컨소시엄을 설계사로 선정한 것이다.

희림 컨소시엄은 총회 당일 서울시가 신속통합기획에서 허용한 최대 용적률인 300%로 낮춘 수정된 설계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용적률을 하향 조정한 부분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날까지 용적률 360%를 주장한 만큼 조합원 사전 서면투표 인원은 설계 변경을 모른 채 투표했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업계에선 서울시가 강경 입장을 내보이는 만큼 사업이 그대로 진행되긴 어렵다고 봤다. 향후 인허가 과정에서 마찰이 우려되는 데다 형평성 문제도 발생할 수 있어서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이 서울시의 정책 기조와 반대되는 희림 컨소시엄과 함께 할 경우 인허가 과정에서 마찰은 물론 사업 차질도 불가피해 보인다”며 “아울러 신속통합기획에 맞춰 설계사를 선정한 다른 구역에서 형평성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설계사 재공모에 무게를 두고 있는 모양새다. 한병용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이날 열린 정례 브래핑에서 “설계사 선정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파악해서 엄정하고 단호한 대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며 “설계사 선정도 다시 이뤄져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압구정3구역을 포함한 압구정 일대는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재건축을 위한 첫 발걸음을 뗐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4월 77만3000㎡ 이르는 압구정 2~5구역 내 최고 50층, 1만1830가구를 조성하는 신속통합기획안을 공개했다. 압구정 3구역은 중심부에 위치한 데다 4개 구역 중 규모가 가장 커 핵심 사업지로 불린다. 5800가구가 들어서고 종상향을 통해 일부 동은 70층까지 올릴 수 있을 전망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