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1억5000만원 이상 고가차 판매 전년대비 38% 늘어
벤틀리·람보르기니·페라리 등 슈퍼·럭셔리카 브랜드 일제히 판매 증가
반면 5000만원 이하 수입차 시장, 2015년 10만대→2022년 4만6000대로 절반 이하로
차량 가격 상승 및 폴크스바겐·토요타 부진, 현대차그룹 약진 등 영향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고급화’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고급 브랜드로 여겨지는 수입차 시장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억대를 넘는 고가 차량 판매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반면, 중저가 모델 판매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11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1억원 이상 고가차 판매는 3만7239대로 전년대비 9.3% 증가했다. 1억5000만원 이상 초고가 차량의 경우 상반기 1만5926대를 판매하며 전년대비 무려 38% 증가했다.
억대 고가 수입차 판매는 최근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015년 억대 수입차 판매는 2만2844대 수준에 그쳤으나 5년 뒤인 2020년엔 4만3158대로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지난해엔 7만1899대로 2년 새 66% 성장했다.
억대 수입차 시장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포르쉐가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지난해 억대 벤츠 차 판매는 3만1576대로 억대 차 시장의 44%를 차지했으며, BMW는 2만2372대를 팔아 31%를 차지했다. 두 브랜드가 억대 시장의 약 75% 점유율을 기록한 셈이다. 같은 기간 포르쉐는 8710대로 12% 점유율을 기록했다.
슈퍼카로 불리는 초고가 차량 판매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자동차 시장 조사기관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람보르기니, 페라리, 벤틀리, 롤스로이스 등 대표 슈퍼카와 럭셔리카 브랜드 판매량이 일제히 증가했다. 상반기 벤틀리 판매량은 389대로 전년대비 9.2% 늘었고, 람보르기는 182대(21.3%↑), 페라리 163대(14.7%↑), 롤스로이스 156대(24.8%↑) 등으로 전년대비 판매가 올랐다.
이에 국내에서 3억원 이상 초고가차량이 6000대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승용차 등록 현황을 보면 지난 4월말 기준 취득가액이 3억원을 넘는 승용차 누적 등록대수는 6299대를 기록했다. 지난 2016년 3억~5억원 승용차 신규 등록 건수는 199건이었으나, 지난해엔 1115건으로 6년 새 5.6배 증가했다.
초고가 수입차 시장이 급성장하며 슈퍼카 브랜드에서도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벤틀리 애드리안 홀마크 회장은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해 “한국은 글로벌 럭셔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나라이며 벤틀리의 세계 10대 시장으로 성장했다”며 한국 시장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벤틀리는 올해 플래그십 스토어 ‘벤틀리 큐브’를 세계 최초로 한국에 만들기도 했다. 벤틀리는 지난해 국내에서 775대를 판매하며 한국 진출 이후 최고 실적을 거뒀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판매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또한 존 엘칸 페라리 회장과 토스텐 뮐러 오트보쉬 롤스로이스모터카 최고경영자도 최근 한국을 찾아 현지 사정을 살폈다.
◇ 5000만원 이하 수입차는 하락세···7년 새 반토막
이에 비해 수입차 내에서 중저가로 평가받는 5000만원 이하 차량 판매는 올 상반기 1만4239대를 판매하며 전년대비 36% 감소했다. 같은 기간 7000만원 이하 차량 판매는 5만8549대로 전년대비 10.5% 줄었다.
5000만원 이하 수입차 판매는 지난 2015년엔 10만6598대였으나, 이후 하락세를 보이며 2020년엔 7만4599대, 2021년엔 6만2950대, 2022년엔 4만6372대로 감소했다.
이는 전체적으로 수입차 가격대가 오르면서 5000만원 이하 차량이 줄어들었다는 것과 폴크스바겐, 토요타 등 중저가 브랜드가 악재로 주춤하고 있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폴크스바겐은 지난 2016년 디젤게이트 사태 이후 판매량이 급감했으며, 올해에는 잦은 출고 정지로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토요타의 경우 일본 불매운동 이후 3년 가까이 판매가 급감했다가 올해부턴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성기 수준을 회복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아울러 현대자동차그룹이 제네시스를 중심으로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으며, 현대차·기아 차량이 예전대비 위상이 올라가면서 중저가 수입차 고객들을 흡수하고 있다는 점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수입차 시장에선 벤츠, BMW가 점유율을 60% 이상으로 높이면서 다른 브랜드들의 설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라며 “과거 벤츠, BMW를 타던 고객들이 포르쉐로 옮겨가고, 이후 초럭셔리카 브랜드로 이동하면서 고가 시장이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일각에선 올 하반기 정부의 법인차 번호판 적용에 따라 초고가 시장 판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는 이르면 오는 9월부터 법인차에 연두색 전용 번호판을 부착하는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새 번호판 적용을 통해 주홍글씨를 새겨 기업 대표나 가족들이 사적으로 고가 차량을 이용했던 악습을 막겠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