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저뱅크·신규 인터넷은행 안은 사실상 '기각'된듯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도 현실성에 물음표
'시중은행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무리하게 추진' 지적도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대형 시중은행의 과점체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 나왔다. 금융당국이 그간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열다섯 차례나 만난 끝에 결과물을 발표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김 샌’ 결과가 나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31년 만에 지방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는 것을 허용해주기로 하고, 저축은행 간 인수합병(M&A)을 촉진하는 방안을 마련한 점은 성과다. 

그러나 시중은행 과점체제의 개선 논의가 최초로 제기될 당시 주목을 끌었던 '챌린저뱅크'(특화전문은행) 설립과 제4 인터넷은행 추가 인가는 사실상 더 이상 추진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된 분위기다. 챌린저뱅크 설립의 경우 ‘향후 관련 제도 구축을 위해 계속 검토하겠다’는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 신규 인터넷은행 인가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설명보다는 ‘기존 인터넷은행의 성과 및 안정성 등 제반 상황을 감안해 심사하겠다’는 식으로 마무리 지었다. 

챌린지뱅크 설립과 인터넷은행 신규 인가는 새로운 은행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주목을 많이 받았다. 지난 2021년 토스뱅크 설립 승인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또 은행이 출범하는 셈이기에 기대는 더 컸다. 타 금융권에서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 금융사들이 은행권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잇달아 제기됐다. 

하지만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유동성위기로 파산하면서 새 은행 인가에 대한 논의는 급격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SVB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챌린지뱅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내 인터넷은행도 SVB처럼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새 은행 설립은 무리라는 판단이 우세해진 것이다. 그 결과 이번 발표에서도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새 은행을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 많았다. 인터넷은행 가운데 카카오뱅크 외에는 아직 시중은행을 상대로 경쟁하기엔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특히 케이뱅크의 경우 관련 법규로 인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설립 후 3년 넘게 제대로 영업을 하기 어려웠다. 새로 인가받은 은행도 자본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번 TF의 핵심 성과인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도 대형 시중은행의 과점체제를 무너트리는 데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란 목소리가 많다. 현재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구은행의 총 자산은 작년 말 기준 약 68조원 규모로 400조가 넘어가는 대형 시중은행과 맞서기엔 무리가 있다. 규모로만 따지면 수협은행(총자산 52조원)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대구은행이 인터넷은행처럼 사용자 수가 많은 모바일 플랫폼을 가진 것도 아니다. 

지방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되는 데 따른 이점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간 지방은행에 적용되던 중소기업대출 비중 규제도 사라졌기에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간의 영업 상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되면 수도권-지역 간 금융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에 금융당국이 애초에 무리하게 과점체제 해소 방안을 추진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은행을 ‘과도한 이자장사로 돈을 쉽게 버는 집단’으로 몰고 가기 위해 처음부터 현실성이 떨어지는 안을 결정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시중은행으로 하여금 대출 이자를 내리도록 하기 위해 일종의 ‘여론몰이’ 수단으로 대형은행 과점체제 개선 방안을 꺼내든 것이란 해석이다. 

은행이 소비자를 위해 움직이도록 금융당국이 새로운 정책을 마련하고 감독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성 없는 대안들을 추진하면 결국 업계의 혼란만 가중된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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