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네트워크, 현정은 민사 배상액 갚으려 2300억 대출···현 회장은 ‘연대보증’
“개인과 회사는 법인격 달라”···“회사 경영상 이익 여부 따져봐야” 의견도
현대그룹 “법률 검토했다” 해명···‘TRS계약 배임 수사’ 경찰, 추가 고발장 접수

현대그룹 CI. / 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현대그룹 CI. / 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쉰들러홀딩스가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으로 발생한 개인 채무를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대출해 변제한 것을 놓고 적법성 논란이 제기된다.

별도의 법인격을 가진 회사의 자산을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했다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5일 확인되는 현대엘리베이터 공시에 따르면, 현대그룹 계열회사인 현대네크워크는 지난 4월13일 자사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433만1171주를 담보로 앰캐피탈과 2300억원의 주식담보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은 쉰들러가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일부 패소가 확정돼 발생한 현 회장 개인의 배상액 1700억여원(이자 포함 2300억여원)을 현대엘리베이터에 지급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졌다.

현 회장도 자신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319만6209주를 현대네트워크의 주식담보계약에 대한 ‘연대보증’으로 사용했다. 현대네트워크는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성격을 띤 계열사로 현 회장 91.7%를 비롯해 현정은 일가가 100%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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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4일자 현대엘리베이터의 '주식등의대량보유상황보고서' 공시. 앰캐피탈과의 주식담보대출계약 내용이 확인된다. / 표=전자공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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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4일자 현대엘리베이터의 '주식등의대량보유상황보고서' 공시. 현대네트워크가 앰케피탈에 2300억원을 대출하고, 현정은 그룹 회장이 연대보증을 선 사실이 확인된다. / 표=전자공시시스템

주목할 부분은 현대네트워크의 주식담보계약이다. 일각에선 현대네트워크의 주식 100%를 현정은 회장 일가가 보유하고 있어 배임죄가 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회사 이익이 아닌 대주주 이익을 위해 현대네트워크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담보로 대출하도록 했다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검사 출신인 김용남 변호사(법무법인 일호)는 “개인이나 가족이 100% 지분을 갖고 있더라도 개인과 법인은 엄격히 다른 법인격을 갖고 있다”면서 “대주주 개인의 채무 변제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별도의 법인인 현대네트워크가 현 회장을 위해 대출을 받았다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네트워크는 2300억원의 대출원금뿐만 아니라 연 12%에 달하는 이자(월 23억여원)부담도 지게 됐다”라며 “어떻게 이런 거래가 가능한지 모르겠다. 업무상 배임이 아니라고 보기가 어렵다”라고 주장했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개인 재산이 아닌 계열사인 현대네트워크의 주식을 담보로 제공했다면 배임 여부에 대해 검토해 볼 수는 있다”면서 “(이번 대출이) 현대네트워크에 어떤 경영상의 이익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몇 가지 사실관계만으로 배임 여부를 확정적으로 답하긴 어렵다”면서도 “문제가 된 경영상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배경,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상황, 피고발인의 고의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최근 현 회장의 파생상품계약(TRS계약)의 배임 고발 사건 수사를 재기한 경찰은 이번 계열사 담보대출을 통한 배상액 변제가 적법한 것인지도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1년 2월 현 회장을 TRS계약 관련 배임 혐의로 고발한 민경윤 전 현대증권노동조합 위원장이 이번 대출 관련 추가 고발장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주주대표소송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뒤 피고발인에 대한 수사를 재기한 것은 맞는다”면서 “수사의 연장선상에서 고발인이 추가로 제기한 의혹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나머지 부분은 답변이 어렵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측은 이번 대출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현대네트워크의 주식담보대출계약이 현대네트워크에 어떤 이익이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법률 검토를 통해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고발인은 앰캐피탈 관계자들도 배임의 공동정범에 해당한다며 경찰에 함께 고발했다. 담보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제공받고,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대출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대출을 강행했다는 게 고발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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