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건설 과징금 608억원··· 2세 회사 ’부당 지원‘ 혐의
국토부, ‘벌떼 입찰’ 건설사들 대대적 조사 예고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호반건설이 ‘벌떼 입찰’(공공택지의 당첨확률을 높이기 위해 위장계열사 등을 벌떼처럼 많이 투입해 입찰하는 것) 택지 전매를 통한 부당지원 혐의로 608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받은 가운데 중흥·우미·제일·대방건설 등의 건설사들도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과거 비슷한 방식으로 공공택지를 받은 4개 건설사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예고하면서다. 부당지원 행위 여부에 따라 강력한 처벌 의사를 밝힌 만큼 건설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호반건설 과징금 608억원···2세 회사 ’부당 지원‘에 주목
20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호반건설에 부당 내부거래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608억원을 부과했다. 페이퍼컴퍼니에 가까운 다수의 계열사를 설립해 이들을 공공택지 추첨 입찰에 참가시켜 당첨 확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다수의 공공택지를 확보한 후 이를 총수 자녀 소유 회사와 자회사에 몰아준 혐의다.
공정위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공공택지 수주 경쟁이 치열했던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계열사 여러 개를 만들고 비계열사까지 동원해 공공택지 입찰에 참여했다. 이른바 벌떼 입찰에 나선 것이다. 공공택지 입찰 방식은 2021년 평가제로 바뀌기 전까지 추첨제로 진행됐다. 가격을 미리 정하고 추첨을 통해 땅을 공급하는 식이다. 더 많은 계열사를 동원할수록 낙찰받을 확률이 커지는 구조다.
호반건설은 이렇게 받은 공공택지 23곳을 총수인 김상열 전 회장의 장·차남 소유의 호반건설주택과 호반산업에 넘겼다. 화성 동탄·김포 한강·의정부 민락 등 알짜 부지가 포함됐다. 2세 회사들은 넘겨받은 공공택지를 개발해 분양매출 5조8575억원, 분양이익 1조3587억원을 거둬들였다. 이 밖에도 호반건설은 2세 회사의 공공택지 입찰신청금을 414회에 걸쳐 무상으로 빌려줬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2조6393억원에 대해서도 무상으로 지급보증을 제공했다. 호반건설이 진행하던 936억원 규모의 공동주택 공사를 넘겨주기도 했다.
공정위는 부당 지원을 통해 이익을 얻는 과정에서 편법 경영 승계가 이뤄졌다고 봤다. 호반건설의 지원으로 호반건설주택과 호반산업은 급격하게 성장했다. 장남 김대헌 사장의 회사인 호반건설주택은 지원 기간 동안 호반건설 규모를 넘어섰고 2018년 호반건설에 합병될 때 가치가 높게 평가됐다. 합병 이후 김 사장은 호반건설 지분 55%를 확보하면서 사실상 경영권 승계를 마쳤다. 공정위는 이 같은 부당내부거래가 주거용 부동산 개발 및 공급업 시장, 종합건설업 시장에서의 지위가 크게 강화되는 등 공정한 거래질서를 저해시켰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국토부는 호반건설의 2019~2021년 벌떼 입찰 건도 경찰에 수사의뢰한 상태다.
◇‘우미·대방·중흥·제일’ 조사 착수···부당지원 혐의 따라 처벌 수위 결정될 듯
정부의 다음 타깃은 비슷한 방식으로 성장한 우미·대방·중흥·제일건설 등 4개 건설사가 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4개 건설사에 대한 벌떼 입찰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는 앞서 같은 해 9월 국토교통부가 벌떼 입찰 근절 대책을 발표한 뒤 공정위에 조사를 의뢰한 데 따른 것이다. 이번 과징금 부과 때 벌떼입찰 혐의를 받는 기업도 곧 조치할 것임을 예고했다.
4개 건설사는 이미 호반건설과 함께 벌떼 입찰 논란에 휩싸였다. 강민국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지난해 8월 공개한 ‘LH의 입찰 관련 업체 당첨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2017~2021년에 호반, 대방, 중흥, 우미, 제일 등 5개 건설사는 벌떼 입찰로 공공택지 178필지 중 67필지(37%)를 낙찰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호반이 18필지로 가장 많았고 우미(17필지), 대방(14필지), 중흥(11필지), 제일(7필지) 순이었다.
공정위는 4개 건설사가 공공택지를 낙찰받는 과정에서 불법이나 편법이 있었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또 이를 총수 일가의 상속을 위한 부당 지원의 수단으로 썼는지 여부가 처벌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부당지원 혐의에 따라 과징금 수위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부당 지원 행위에 쓰인 자금이 공공택지 입찰 과정에서 벌떼 입찰로 마련됐다는 점에 주목하며 강력한 조사 방침을 밝혔다. 원 장관은 “호반건설뿐 아니라 그동안 적발된 수십 개의 벌떼 입찰 건설사가 현재 경찰·검찰 수사와 공정위 조사 등을 받고 있다”며 “제도적 보완을 통해 벌떼 입찰을 원천 봉쇄하겠다”며 추가 대응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