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모임 대표, ‘정관 개정’ 반대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나서
주요 주주 찬성 시 부결 가능성 낮아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KT 이사회가 대표이사(CEO) 자격 요건을 완화하는 정관 개정을 추진하자, 소액주주들이 정관 개정 반대를 위한 의결권 대리 행사 위임 등 단체행동에 나섰다. 자격 요건에서 ‘정보통신기술(ICT)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삭제할 경우 ‘낙하산 인사’가 선임될 우려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차기 KT CEO 후보군 사이에서도 과거 이석채 전 KT 회장 선임 직전 정관 개정을 떠올리는 등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결집에 한계가 있는 소액주주 특성상 KT 주요 주주들이 정관 개정에 찬성표를 던질 경우 이를 뒤집기는 힘들 전망이다.
19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KT 소액주주 모임인 네이버 카페 ‘KT주주모임’ 운영자 배창식씨가 오는 30일 KT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난 17일부터 소액주주들에게 의결권 대리 행사 권유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배씨는 KT가 차기 CEO 선임을 두고 진통을 겪으며 주가가 하락하자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KT 정기 주주총회를 한달 앞둔 지난 2월말 개설했다. 배씨를 포함한 소액주주들은 회사 측에 주주 환원 정책 확대 및 '낙하산 인사' 방지를 위한 정관 변경 등을 줄곧 주장해왔다. 배씨는 지난달 KT 사외이사 후보로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 우려
배씨는 의결권 대리 행사 권유의 취지로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개인 소액주주의 단결된 의견 전달’을 꼽았다.
그가 임시 주총을 앞두고 의결권 대리 행사 위임에 나선 것은 차기 CEO로 ‘낙하산’ 인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해서다. 이는 KT가 임시 주총에서 CEO 자격 요건을 완화하는 정관 개정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현재 KT 정관 제32조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 관련 조항에 따르면 KT 이사회는 ▲경영·경제에 관한 지식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력·학위 ▲기업경영 경험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과거 경영실적, 경영기간 ▲기타 최고경영자로서 자질과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요소 ▲정보통신분야(ICT)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평가할 수 있는 요소 등 4가지를 CEO 후보 심사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가운데 KT 이사회는 임시 주총을 통해 기존 대표이사후보심사위를 폐지하고 그 권한과 역할을 신설 ‘이사후보추천위원회’로 이관할 예정이다. 논란이 되는 것은 이와 함께 임시 주총 안건으로 공시한 CEO 자격요건 규정 개정의 건이다.
KT 이사회는 제25조 CEO 선임 관련 정관을 개정해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기업경영 경험과 전문 지식 ▲대내외 이해관계자의 신뢰 확보와 협력적 경영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역량 ▲글로벌 시각을 바탕으로 기업의 사업 비전을 수립하고 임직원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리더십 역량 ▲산업 환경 변화를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관련 산업·시장·기술에 대한 전문성 등 4가지를 명시하기로 했다.
◇ 차기 CEO 후보로 공영운 현대차 사장 등 거론
기존 정관과 비교하면 CEO 심사 기준에서 ‘ICT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사라져 당초 선임 기준에서 허들이 다소 낮아진 셈이다. 이에 따라 기존 정관으로는 KT 등 통신업계 출신 후보가 유리했지만, 정관 개정 시 비통신업계 인사가 선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일각에서 차기 CEO 후보로 공영운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 등이 거론되는 이유다.
이렇다 보니 배씨는 “정관 제32조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의 권한과 역할 이관 과정에서 CEO의 '정보통신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요건이 삭제됐다”며 “ICT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CEO의 선임 가능성을 열어 두는 선택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정관 개정에 대한 우려는 차기 KT CEO에 도전하는 잠룡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과거 이석채 전 KT 회장 선임 직전의 정관 개정과 마찬가지로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둔 정관 개정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이 전 회장은 2005년부터 SK C&C 사외이사로 활동한 탓에 ‘회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 및 공정거래법상 동일한 기업 집단에 속한 회사의 임직원 또는 최근 2년 이내에 임직원이었던 자’라고 명시된 이사 자격제한 요건에 해당됐지만, KT 이사회가 CEO 후보 추천에 앞서 기존 정관을 ‘주요 사업 분야의 경쟁사와 그 그룹 계열사 임직원도 선임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완화하면서 유력 주자로 부상, 실제 KT CEO 자리에 올랐다.
통신업계 고위 관계자는 “KT 이사회가 정관에서 ICT 전문성을 없애려고 하는 게 공영운 사장과 같은 인사를 맞이할 준비하기 위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과거 이 전 회장 선임 시에도 SK그룹의 사외이사로 근무한 이력이 문제가 되니까, 정관을 개정해 허들을 낮춰 선임한 바 있다. 이번에도 이 전 회장 선임 때와 비슷한 수순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관 개정에 대한 이같은 반대 목소리에도 임시 주총에서 주요 주주들이 찬성표를 던질 경우 해당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KT 지분 8.27%를, 2대주주 현대차그룹은 7.79%(현대차 4.69%, 현대모비스 3.1%)를, 3대주주 신한은행은 5.58%를 보유하고 있다. KT 전체 지분 중 50% 이상이 소액주주이지만, 반대표를 결집하기에 한계가 있다. 실제 지난 3월 정기 주총서 소액주주 모임은 집단 주주권 행사를 선언했지만, 지분율 1%대를 모으는 데 그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