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 배치
배치 땐 27년 만에 영토 밖 이동
유럽 등 국제사회 안보 위기감 커져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맹방인 벨라루스에 다음 달 전술 핵무기를 배치할 것이라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전술 핵무기 해외 배치가 임박함에 따라 국제사회에 안보 위기감이 더욱 커지게 됐다.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러시아를 방문한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다음 달 전술 핵무기를 다음 달 7~8일 배치하겠다고 했다.

전술 핵무기란 전장에서 적군이나 무기를 파개치괴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된다. 상대적으로 짧은 사정거리에 폭발력도 낮아 전략 핵무기와는 차이가 있다. 전략 핵무기보다 위력이 작지만 중요 인프라 등을 파괴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유럽에 배치된 전술 핵탄두 100기를 포함해 200기를 가진 반면 러시아는 2000기를 보유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가 전술 핵무기 배치 카드를 꺼낸 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로 풀이된다.

앞서 푸틴은 지난 3월 25일 벨라루스 측 요청에 따라 러시아 전술 핵무기를 벨라루스 영토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미국 역시 오랫동안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 영토에 핵무기를 배치해 왔다”며 “러시아와 벨라루스도 같은 합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벨라루스는 ‘형제국’으로서 친러시아적 행보를 변함없이 유지해오고 있다.

러시아의 핵무기가 해외에 배치되는 건 1991년 옛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 러시아가 시작한 해외 핵무기 국내 이전이 1996년 완료된 이후 27년 만이다. 러시아는 이미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 시스템을 벨라루스에 넘긴 것으로도 알려졌다. 벨라루스 역시 1996년 핵무기를 러시아에 반환한 뒤 27년 만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부 경계 코앞에 러시아의 핵무기가 놓이게 된다. 벨라루스는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 같은 전술핵 재배치가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은 아니다. 핵무기를 해외로 이전하긴 하지만 통제권은 러시아가 갖기 때문이다. 미국이 독일, 이탈리아, 튀르키예 등에 전술핵을 유지해온 것과 같은 차원이다.

러시아의 전술 핵무기 해외 배치가 현실화하면서 안보 위기감은 더 커지는 분위기다. 뿐만 아니라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 미국과의 핵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서 전략 핵무기에 대한 통제 체제까지 흔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서 해외 핵무기 배치에 반대하고 이미 배치한 핵무기도 철수해야 한다고 밝힌 입장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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