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수 21% 증가 허용···내력벽 철거 규제 완화
경쟁력·사업성 확보···“리모델링 활성화 전망”
특별법 제정 시기 불투명···“희망고문 우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리모델링 단지 챙기기에 나섰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을 통해 가구 수를 늘려주고 ‘대못 규제’로 꼽히는 내력벽 철거 규제도 풀어줄 뜻을 밝혔다. 특별법이 재건축 중심으로 발표되면서 리모델링 단지의 반발이 거세지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규제 완화를 계기로 리모델링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지만 특별법 제정 시기가 불투명해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등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노후계획도시 특별법)에 따라 리모델링 사업 시 가구 수 상한을 현행 기준의 140% 완화하는 특례를 주자는 안을 국회에 제시했다. 현재 주택법에 따라 리모델링 사업을 할 경우 15%(세대 수 증가형) 이내에서 세대 수를 늘릴 수 있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을 적용하면 최대 21%까지 세대 증가 효과를 보게 된다.

앞서 정부는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노후계획도시 정비를 위한 특별법 추진 계획과 함께 리모델링으로 늘릴 수 있는 가구 수를 기존 최대 15%에서 20% 안팎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번엔 정부가 증가 가구 수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명시한 것이다. 가구 수가 늘어나면 리모델링 추진 단지의 사업성도 올라가게 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4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노후 아파트단지 밀집 지역을 둘러보며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국토부는 리모델링 사업의 대못 규제로  꼽히는 내력벽 철거에 대한 완화도 시사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4일 1기 신도시인 안양 평촌신도시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건축 기술도 많이 발전을 했고 안전에만 문제가 없을 시 되도록이면 규제를 풀자는 게 국토부의 입장”이라며 “내력별 철거 시 안전에 문제없는 범위가 어디인지 전문가들과 국민 절대다수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까지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건축물 내력벽은 구조물의 무게를 견디는 벽이다. 현재 가구 내 내력벽은 철거가 가능하다. 하지만 더 많은 하중을 지탱하는 가구 간 내력벽은 안정상의 이유로 철거가 불가능하다. 이런 규제로 인해 평면 구성과 구조 설계가 단조롭다 보니 리모델링 활성화에 한계가 있단 지적이 있다. 내력벽 철거가 허용될 경우 리모델링 초기 단계에 있는 단지들은 설계에 대한 제약이 없어 순조로운 사업 추진이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국토부는 수직증축 안정성 검토 절차 간소화도 검토하겠단 방침이다. 수직 증축 역시 신규 주택 공급을 늘려 조합원들의 분담금을 줄일 수 있는 해법으로 꼽히지만 안전 문제 등의 이유로 여전히 활성화가 안 돼 있다. 2013년 주택법 개정으로 수직증축이 허가됐음에도 현재까지 최종 문턱을 넘은 단지는 서울 송파구 성지아파트와 강남구 대치1차현대아파트 두 곳뿐이다.

업계에선 이들 규제가 완화돼야만 아파트 리모델링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수직증축과 내력벽 관련 규제가 풀리면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어 리모델링 사업도 경쟁력이 생기게 된다”며 “1기 신도시 중 평균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 사업 추진이 어려웠던 평촌(204%)과 산본(205%)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 완화가 1기 신도시뿐 아니라 조성 후 20년이 넘은 노후 택지개발지구에도 적용되는 만큼 각 단지들은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이에서 유불리를 고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특별법 통과가 언제 이뤄질진 미지수다. 실거주 의무 폐지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의 다른 규제 완화 현안에 밀려 국토위 소위조차 거의 열리지 못하고 있어서다. 특별법 제정이 늦어질 경우 주민 갈등만 증폭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산본의 한 리모델링 사업 추진 단지 관계자는 “정부가 구체적인 내용도 없고 청사진만 던져 놓은 상태라 주민들의 심경이 복잡한 상황”이라며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늦어지는 김에 리모델링 대신 재건축을 추진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혼란을 줄이기 위해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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