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걸림돌’ DSR 완화 가능성 높아
“과도한 대출, 새로운 세입자 부담 커질 수도”

/ 그래픽=시사저널e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전세자금퇴거대출 규제 완화에 나선다. 전셋값 급락으로 집주인이 임차인의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 우려가 커지자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시장에선 완화 방안으로 대출의 가장 큰 걸림돌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손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DSR 완화 시 과도한 대출로 인해 새로운 세입자의 부담이 커지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전세보증금 반환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현재 전세 퇴거 자금용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전세금 반환보증 관련 대출에서 선의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해 제한적으로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부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경제 정책 사령탑인 추 부총리가 역전세 문제와 관련해 범정부 차원에서 대출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건 처음이다.

정부가 규제 완화에 나선 건 최근 역전세난으로 보증금 미반환 우려가 커지면서다. 전국 아파트 전세 가격은 2021년 하반기~지난해 초 정점을 찍었다가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이 본격화한 지난해부터 덩달아 하락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빅데이터 솔루션 직방RED를 활용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전셋값은 2년 전인 2021년 4월보다 11.8% 내렸다. 최근 전셋값 하락폭은 점차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고금리와 전세사기 여파로 전세 기피 현상이 심화된 점도 가격하락을 부추겼다.

수도권에선 이미 역전세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아파트 실거래가 플랫폼 호갱노노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최근 3개월간 직전 거래 대비 전세보증금이 낮아진 역전세 계약은 3만2929건으로 집계됐다. 경기도 역전세 계약이 1만7759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 1만870건, 인천 4300건 등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선 전셋값이 정점을 찍은 2021년 9월 계약분 만기가 돌아오는 오는 9월부터 대란이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집주인들은 DSR 등 대출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 왔다. 대출을 받아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고 싶어도 DSR 한도에 막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한 용도로 받는 상품은 크게 전세퇴거자금대출·생활안정자금·보금자리론대출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전세퇴거자금대출은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마찬가지로 DSR,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그대로 적용된다. 정부는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DSR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전셋값이 떨어져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기 때문에 금융당국과 대출을 터주자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DSR 완화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대출규제 완화에 따라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은 커지지만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는 은행 선순위 근저당권이 과도하게 잡힌 주택에 살아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집주인이 갭투자로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새로 들어온 세입자는 은행의 선순위 채권에 밀려 전세보증금을 떼이게 된다”며 “각종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정부도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은행권 입장에선 가계부채가 늘고 연체율이 급증할 가능성도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에서 올해 1~4월 새로 실행된 전세퇴거자금 대출액은 2조968억원으로 직전 4개월(1조2798억원)과 비교해 64% 증가했다. 여기다 지난 2월 신청이 시작된 정책모기지 특례보금자리론에는 임차보증금 반환 용도의 신청액만 약 2조6210억원(4월 말 기준)이 몰렸다. 올해만 보증금 반환을 위한 대출 수요가 5조원에 육박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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