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보험사 합산 당기순익 5조2300억원 추산···전년 동기比 50%↑
주주들, 배당 정책 확대 요구···당국, 회계기준 변경 따른 착시효과
보험사, 건전성 관리 집중···유상증자 등 자본 조달 수단 다양화
적절한 주주환원 수준 설정 및 주주 동의 과정 중요···배당 놓고 주주와 보험사 간 갈등 지속될 것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새 국제회계기준(IFRS9) 도입 효과로 올해 1분기 역대급 실적을 거둔 보험사들의 손익 변화를 놓고 시장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주주 입장에서는 순익이 늘어난 만큼 배당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금융당국과 보험사는 회계 전환으로 인해 실적이 개선된 만큼 리스크 관리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분기에 기록한 보험사 이익 중 상당금액이 IFRS9에 의한 투자손익으로 발생한 미실현이익인데다 향후 금리 변동에 따라 등락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주와 보험사 간 입장 차가 분명해 당분간 설왕설래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합산 당기순이익이 5조23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됐다.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늘어난 수치로 지난해 전체 보험사가 기록한 9조2000억원과 비교하면 이미 76%에 육박하는 성과다. 일각에서는 1분기와 같은 실적을 올해 계속 낸다고 가정하면 연간으로는 무려 20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까지 나온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생보사가 2조73000억원, 손보사가 2조5000억원을 각각 기록한 것으로 추정됐다. 호실적의 배경에는 IFRS9 도입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IFRS9이란 보험회사가 받은 보험료를 운용하기 위해 투자한 채권 등 금융상품을 어떻게 회계적으로 인식(처리)할지에 대한 기준이다. IRS9은 지난 2018년 1월부터 금융권에 시행됐지만 적용 여부에 대한 선택권이 있었던 보험사들의 경우 대부분 올해부터 시행했다.
IFRS9 적용 전 보험사들은 보유한 주식·채권의 가격 변동에서 발생하는 평가손익을 미실현손익(기타포괄손익누계액)으로 반영해왔다. 단순히 투자자산의 가격 변동이기 때문에 주요 영업활동에 따라 실현된 이익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부터 보험사들은 IFRS9 도입으로 인해 이같은 투자자산에 대한 평가손익을 당기손이익으로 인식해야 한다. 보유한 주식·채권의 가격 변동이 보험사의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매도가능채권은 손익계산서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IFRS9 적용에 따라 매도가능채권에서 발생하는 손익을 당기손익으로 인식하게 됐다"며 "당기순이익에 반영된 보험사들의 각종 투자자산의 평가이익이 실적을 크게 좌우했다"고 말했다.
투자자산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커졌다는 지적과 함께 보험사의 역대급 실적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분분하다. 특히 손익 변화는 배당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주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실제 지난 1분기 실적 발표에서도 주주들의 관심은 배당 정책이었다. 보험사 실적이 금리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순이익에 영향을 미치게 됐고 회계상의 순이익 급증이 주주들을 자극했다는 설명이다.
물론 금융회사의 주주환원이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주주 입장에서는 순이익이 늘어난 만큼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문제는 회계기준 변경에 따른 착시효과라는 것이다. 보험사 펀더멘털(기초체력)은 그대로인데 회계기준만 변경됐다는 의미다. 실제로 1분기 금리가 인하하면서 보험사가 보유한 채권 가치가 올랐다. 금융감독원 분석에 따르면 1분기 금리 하락에 따라 늘어난 보험사 채권 평가이익이 세후 기준 6200억원에 달한다. 제도 효과를 제외할 경우 1분기 전체 보험사의 당기순이익은 3조3200억원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오히려 500억원 가량이 감소했다.
결국 채권가격 상승에 따른 보험사의 이익은 실제로는 실현되지 않은 투자자산의 평가이익일 뿐인데 회계상으로는 마치 주요 영업활동으로 발생한 이익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주주들을 중심으로 배당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산의 가격 변동이 당기순이익에 반영되면서 향후 주식·채권 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보험사들은 흑자와 손실을 오가며 실적이 출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에 보험사들은 건전성 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만기가 도래한 콜옵션(조기상환권)에 대응하고 부채 증가로 인한 건전성 확보를 위해 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다. 자본조달을 위해 유상증자, 자본인정 증권 발행, 잉여금의 유보, 자산 매각 등 수단을 다양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손익 변동성이 매우 커진만큼 적절한 주주환원 수준을 설정하고 주주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뒤늦게 회계기준 가이드라인 마련에 착수했지만 배당을 놓고 보험사와 주주 간 갈등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