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이어 미국도 독과점 우려 통보
주관사였던 KDB산업은행 책임론 부상···무산 시 공적자금 회수 사실상 없어
기업결합 불승인으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 실패 선례 존재
KDB산업은행, 국제적 불명예 직면···시정조치안 마련해 승인 위한 총력전 주력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합병을 심사 중인 EU(유럽연합)와 미국이 양사 결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최종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합병을 심사 중인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양사 결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최종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지난 2020년 11월부터 약 3년 간 진행 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합병이 난기류를 타고 있다. 유럽연합(EU)에 이어 미국으로부터 일부 노선 독과점 우려가 있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난항이 거듭되고 있다. 무리없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했던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한공 합병 절차에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책임의 화살은 주관사였던 KDB산업은행을 향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직면한 가운데 KDB산업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KDB산업은행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추진을 공식화한 이후 세계 14국에 기업결합 허가를 신청해 11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현재 EU, 미국, 일본 등 세 곳이 남은 상태다.

당초 KDB산업은행은 이들 국가에서도 큰 이변이 없다면 승인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EU와 미국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나타내면서 업계 안팎으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하는 한-미 13개 노선 가운데 5개 노선(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뉴욕·LA·시애틀)에서 독점이 커진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인천-샌프란시스코는 유나이티드항공, 인천-호놀룰루는 하와이안항공이 운항하지만 점유율이 20% 수준이다. 나머지 노선은 대한항공·아시아나·델타항공이 운항하는데 델타항공은 대한항공과 '조인트벤처'라는 강력한 동맹관계를 맺고 노선을 공유 중이어서 미 정부는 사실상 같은 회사로 보고 있다.

앞서 EU도 지난 17일(현지시간) 중간심사 보고서에서 "심층적으로 조사한 결과 두 항공사의 합병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간 4개 노선에서 승객 운송 서비스 경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통보한 바 있다.

주관사인 KDB산업은행은 좌불안석 그 자체다. 지난 2019년 금호그룹은 유동성 위기로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하고 HDC현대산업개발과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계약이 무산됐고 지난 2020년 KDB산업은행은 채권단 대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추진했다. KDB산업은행 입장에서는 그 동안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한 대규모 공적 자금 회수를 해야 하는데 합병이 무산되면 공적 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사기업의 책임을 국민이 고스란히 떠맡게 되는 셈이다.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해 KDB산업은행이 투입한 공적자금만 3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항공은 1조원의 계약금과 중도금을 아시아나항공에 지급했고 현재 잔금 8000억원만 남은 상태이지만 합병이 무산된다면 이미 지급된 1조원도 회수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

아시아나항공은 최악의 경우 파산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최근 몇 년 간 감소세를 보여온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최근 다시 상승했다. 올해 1분기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대비 233.75%포인트 상승하며 1780.17%에 육박했다. 연결기준으로는 2000%를 넘겼다. 아시아나항공은 유상증자를 실시해 자본을 확충하며 재무구조 개선을 꾀한다는 계획이었지만 합병이 지연되면서 계획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무엇보다 KDB산업은행의 행보를 두고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주관사로서 면밀히 살펴봤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KDB산업은행은 이전에 비슷한 사례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지난해 KDB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그룹(HD현대)에 매각해 조선업계를 '빅2' 체계로 구조조정 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EU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무산된 바 있다. 기업결합심사 불승인으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실패라는 쓴맛을 봤음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해외 기업결합심사에서도 좌절된다면 KDB산업은행은 국제적인 불명예를 안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플랜B를 마련하지 않은 채 플랜A에만 집중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미 선례가 있었던 만큼 주관사로서 이들의 인수 과정을 더 세심히 살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KDB산업은행 측은 아직까지 플랜B를 생각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EU와 미국 측에서 결합 우려를 명시한 만큼 승인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경쟁제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정조치안을 마련해 승인을 위한 총력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아직 경쟁당국 승인과 관련해 확정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플랜B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현재 추진하고 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 안에 대해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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