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9, 1억원 상당 가격에도 1만대 팔려···“국산 첫 대형 전기 SUV에 상품성 갖춰”
기아 이어 제네시스 고급 전기차 시장 진출 시 프리미엄 수입차 브랜드 입지 약화
수입차 “현대차·독일 3사 외 다른 브랜드 선호하는 고객 다수···차별화 전략 노릴 것”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기아 전기차 ‘EV9’이 1억원에 육박하는 고가에도 플래그십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하면서, 반대로 프리미엄 수입차 브랜드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내연기관 시대에선 현대차·기아가 중저가 시장에 머물렀지만, EV9 흥행으로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향후 시장 장악력을 높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 EV9은 사전계약 8일만에 1만대를 돌파하며 흥행을 예고했다. 당초 대중 브랜드 인식이 강한 기아 차량을 소비자들이 1억원에 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예상을 뒤엎고 EV9은 고가 차량임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기아 내부적으로 사전계약 전에 올해 1만2000대 생산을 목표로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8일만에 국내에서 1만대 계약에 성공하면서 사실상 올해 완판된 셈이다.
기아 관계자는 “EV9은 국내 첫 3열 대형 전기 SUV로 높은 상품성과 다양한 옵션까지 더해져 인기를 얻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V9 성공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기아 위상이 올라간 결과로 풀이된다. 그동안 현대차와 기아는 국내에서 대중 브랜드 이미지가 강했으며, 수입차 대비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글로벌 완성차 대비 출발이 늦은 데다, 현대차·기아가 대중적인 차량에 집중하면서 프리미엄 시장에선 기를 펴지 못했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를 맞아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개발해 다른 완성차 대비 빠르게 전기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2021년 E-GMP 기반 첫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5를 시작으로 EV6, 아이오닉6까지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에너지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분기 현대차그룹 전기차 판매량은 11만9000대로 테슬라, 폴크스바겐그룹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아이오닉과 EV 시리즈는 테슬라나 다른 완성차 기업들이 경계할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나며 전세계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라며 “EV9은 국내 첫 대형 전기 SUV라는 점과 디자인, 옵션, 실내 공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가격대가 높아도 충분히 구매 매력이 있는 차”라고 설명했다.
기아 EV9 성공으로 프리미엄 수입차 브랜드들이 느끼는 부담이 커지고 있다. 내연기관 시절에는 현대차·기아가 프리미엄 시장에는 진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 공략이 가능했지만, 전기차 시대에 접어들면서 현대차그룹이 고급화 전략을 강조하고 있어 앞길이 만만치 않다.
현대차그룹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브랜드 평판이 상승하면서, 최근 ‘제값 받기’에 성공하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역대급 영업이익을 달성한 바 있다.
특히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현대차그룹 중 가장 먼저 전기차 전환을 예고하면서 수입차 브랜드들이 전기차 시장에서 설 곳이 더 줄어들 전망이다.
제네시스는 오는 2025년부터 나오는 모든 신차를 전기차 및 수소차로 출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제네시스는 브랜드 초기에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G80과 GV80 출시 이후 고급 세단과 SUV 시장에서 각각 성공하며 프리미엄 수입차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제네시스는 10만8384대를 판매하며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7만6879대)를 추월해 프리미엄 브랜드 판매 1위를 차지했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10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벤츠, BMW, 아우디 등 국내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탄탄한 독일 3사의 경우 상황이 나은 편이다. 독일 3사는 국내 마니아층이 두터운 데다 수입차 브랜드 중 발 빠르게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면서 입지를 넓혀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4월 독일 3사 전기차 판매는 3821대로 전체 수입 전기차 판매(5417대·테슬라 제외)의 70%를 차지했다.
하지만 다른 브랜드들의 경우 전기차 도입 일정이 늦어지면서 전기차 시대에선 뒤처질 우려가 있다. 최근 수입차 중하위권 브랜드들의 경우 신차 부재에 따라 판매가 줄어들고 있으며, 이에 따른 투자 감소로 서비스 품질이 하락해 소비자가 외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로 인해 수입차 시장에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전기차 시대에선 현대차그룹까지 진출해 상황이 더 악화될 우려가 있다.
이와 관련, 수입차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국내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현대차나 독일3사가 아닌 수입차 브랜드를 선호하는 고객들도 여전히 많기 때문에 차별화 전략을 노린다면 승산은 충분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