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문래동 ‘남성맨션’ 6차례 유찰
청량리8구역·노량진1구역도 인기 시들
“수익성 악화에 서울서도 선별 수주”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정비사업 조합들이 시공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설자잿값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데다 미분양 우려가 커지자 건설사들이 수주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어서다. 정부의 규제 완화로 속도를 내려던 정비사업장들의 근심이 커지는 모양새다.
1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남성맨션’ 재건축 사업장은 시공사 입찰을 6차례 진행했지만 모두 유찰됐다. 조합이 3.3㎡당 공사비를 525만원에서 719만원까지 올리고, 입찰 보증금을 9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내렸음에도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건설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 열린 현장설명회엔 삼성물산과 포스코이앤씨 등 대형 건설사를 포함한 7개 업체가 참여했다. 남성맨션은 지하 3층~지상 28층, 488가구 규모로 공사비는 1000억원대로 책정됐다.
서울 알짜 사업장도 건설사들의 참여가 저조한 실정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과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동대문구 ‘청량리8구역’(610가구)은 올해 두 차례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에 나섰지만 롯데건설만 단독으로 참여해 모두 유찰됐다. 노량진뉴타운 최대어로 불리는 ‘노량진1구역’(2337가구)도 삼성물산과 GS건설 두 곳만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곳은 컨소시엄 구성이 불가해 두 곳 중 한 곳이 단독 입찰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역세권에 위치한 소규모 사업장도 과거와 달리 인기가 한풀 꺾였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공덕현대아파트’는 앞서 현장설명회에 건설사 10곳이 관심을 보였으나 입찰엔 단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단지는 219가구 규모의 소규모 사업장이지만 지하철 5·6호선·공항철도선이 지나는 역세권에 자리했다. 강북구 미아3구역(268가구) 가로주택정비사업도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뒤 최근 재공고를 냈지만 또 다시 유찰됐다. 이곳은 지하철 4호선 미아역과 우이신설선 삼양역을 끼고 있어 더블 역세권 단지로 꼽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부동산 시장 호황기엔 규모가 작아도 입지가 좋으면 대형사도 입찰에 참여했다”며 “사업 속도가 빨라 소규모 재건축을 여러 개 수주해 실적을 채웠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소규모 사업장은 조합원 물량이 대부분이라 사업성이 좋지 않고 대규모 단지에 비해 인프라가 적어 분양성도 떨어지는 편이다”며 “건설 경기 악화로 더욱 외면받는 모양새다”고 덧붙였다.
‘분양 불패’로 불리는 서울에서조차 건설사들이 수주를 꺼리는 건 건설 경기가 침체된 영향이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건설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데다 고금리로 금융 비용까지 늘어나면서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자 최근 건설사들은 선별 수주에 나서고 있다. 수요자들의 매수 심리가 위축돼 완판이 어려워지고 미분양 위험성이 커졌다는 점도 건설사들이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는 요인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건설사 도시정비사업 실적은 크게 줄었다. 올해 1분기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의 도시정비사업 신규 수주액은 4조5242억원이다. 전년 동기(6조7786억원)대비 33.3% 줄었다. 심지어 대우건설, 롯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HDC현대산업개발 등 4곳은 아직까지 수주 실적이 없다.
업계에선 당분간 시공사를 찾지 못해 사업이 표류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는 “주택 시장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다 아직까지 조합과 시공사가 생각하는 적정 공사비 사이의 괴리가 커 건설사들이 선뜻 수주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며 “정부의 정비사업 관련 규제 완화로 속도를 내려던 사업장 입장에선 또 다른 변수를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