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노동자 추락사고서 하청 아닌 ‘원청’ 대표자 유죄 판결 선고
삼표그룹 ‘채석장 붕괴사고’도 법인 아닌 기업집단 대표자가 재판에
정도원 회장, 안전보건 업무 실질적·최종적 권한 행사 여부 등 관건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회사 대표에게 유죄 판결이 선고됐다. 이 선고는 중대재해법 위반 관련 ‘1호’ 판결이다.
이런 가운데 중대재해법 ‘1호 사고’로 지난달 말 재판에 넘겨진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의 경우 경영책임자의 범위와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지켰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4단독 김동원 판사는 지난 6일 중대재해법 위반(산업재해 치사) 혐의로 기소된 A회사 대표 B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B씨는 지난해 5월 경기 고양특례시의 요양병원 증축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하청 노동자 추락 사고와 관련 ‘안전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지키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하청업체 대표 뿐 아니라 원청업체인 B씨도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조치 의무가 있는 사업주’로 규정했다. 원청업체 대표가 안전보건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않으면서 현장에 안전조치가 없었고 이 결과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며 부실한 안전보건관리체계와 중대재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1심 재판부 역시 “회사가 안전대 부착, 작업계획서 작성 등 안전보건 규칙상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가 추락해 사망했다”며 B씨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결국 중대재해법 위반 사건의 관건은 중대재해법 안전보건확보의무의 주체로 규정한 ‘경영책임자’의 범위와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 여부로 좁혀진다.
중대재해법 ‘1호 사건’인 경기 양주 채석장 붕괴 사망사고(사망자 3명)와 관련, 최근 기소된 삼표그룹의 정도원 회장 재판도 이 쟁점이 중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의정부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홍용화)는 지난달 31일 정 회장을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이사 등 임직원 6명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법인의 대표이사가 아닌 그룹 회장을 ‘경영책임자’로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이 사건에서 정 회장이 ▲30년간 채석산업에 종사해온 전문가이자 사고현장의 석분토 야적장 설치와 그 채석작업 방식을 최종 결정한 점 ▲사고 현장에서 채석작업이 계속될 경우 기울기가 가팔라지고 채석을 위한 반복적 발파 진동으로 사면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던 점 등을 근거로 그가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 ▲정 회장이 생산목표 달성을 위해 채석작업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직원에게 안전보건 업무 등에 관한 구체적 지시를 내리는 등 실질적·최종적 의사결정권을 행사했던 점 ▲정 회장이 실제 각종 정기보고와 지시를 통해 주요사항을 결정했다며 그가 안전보건 업무에 관해 실질적·최종적인 경영권을 행사하였다고 판단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뉴스레터를 통해 “검찰은 기업집단의 대표자라 하더라도 안전보건 업무에 관해 실질적·최종적인 권한을 행사한 경우라면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로 처벌받을 수 있고 반면에 법인의 대표이사라고 하더라도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다면 경영책임자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세종 측은 “검찰의 입장이 향후 재판과정에서 그대로 인정될지 주목해야 한다”며 “검찰의 입장에 따르면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는 사업을 운영하는 법인 뿐만 아니라 법인이 소속된 기업집단에서도 안전보건확보의무가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에 관한 실질적·최종적인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정리할 필요성도 매우 커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