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금리 하락·당국 압박 영향
커지는 연준 정책 전환 기대감
당분간 대출 금리 내려갈듯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최근 시중금리의 하락세의 영향으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 하단이 1년 만에 3%대로 내려갔다. 더구나 최근 미국 인플레이션 둔화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전환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어 당분간 대출금리가 내려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고정형(혼합형) 주담 금리는 전날 기준 3.66~5.85%를 기록했다. 특히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의 혼합형 주담대 금리 하단이 각각 3.66%, 3.95%로 3%대로 내려갔다. 지난 2월에도 주담대 금리는 내려갔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주담대 금리는 4.56%로 전월(4.58%) 대비 0.02%포인트 내려간 것으로 집계됐다. 주담대 금리는 4개월 연속 하락했다.
혼합형 주담대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 금리가 최근 내림세를 기록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2일까지만 해도 4.564%에 달했던 은행채 5년물(무보증·AAA) 금리는 30일 3.905%로 0.659%포인트 하락했다.
최근 시중금리는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가 긴축정책의 속도를 조절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면서 채권 투자 수요가 늘어난 영향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으로 불거진 은행권 위기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점도 긴축 완화에 대한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채권 투자가 늘다보니 채권 가치는 상승(채권 금리 하락)한 것이다.
더구나 금융당국 수장들이 대형 시중은행들에 금리인상을 자제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점도 대출 금리 하락의 원인으로 꼽힌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날 5대 금융지주 회장단을 만나 "시장금리 상승과 같은 비용상승 요인을 금융권에서 최대한 자체적으로 흡수해 대출자에 전가되는 금리인상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최근 조만간 금리 하락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그는 지난달 30일 우리은행 '영등포 시니어플러스점' 개설식에 참석해 "최근 여러 가지 금융시장 불안 등 여건에서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미국 국채금리와 연계된 우리 국내 단기 시장 금리 등이 상대적으로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며 "이에 영향을 받아 신잔액 코픽스 기준금리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의 요구에 시중은행들은 즉각 반응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30일 '우리상생금융 3·3 패키지'를 발표하고 가계대출 상품 금리를 일제히 내렸다. 주담대 금리는 최대 0.7%포인트, 전세자금대출은 최대 0.6%포인트, 신용대출은 최대 0.5%포인트를 하향 조정했다. 신한은행은 주담대 금리 0.4%포인트, 전세자금대출 금리 0.3%포인트, 일반 신용대출 금리 0.4%포인트, 새희망홀씨대출 금리 1.5%포인트를 각각 내리기로 결정했다.
국민은행도 앞서 신용대출 금리는 신규 및 기한 연장 시 최대 0.5% 포인트,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0.3% 포인트, 주담대 금리는 0.3% 포인트 내린 바 있다. 농협은행은 신용대출과 주택 외 부동산 담보대출에 일괄 우대금리를 적용해 0.3%포인트 인하했다.
은행권에선 대출금리 하락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물가상승이 둔화되고 있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31일(현지시각) 미 상무부에 따르면 2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보다 5.0%, 전월보다 0.3% 각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오름폭은 1월(5.3%)보다 둔화해 거의 1년 반 만에 최소폭을 기록했다. 전월 대비 상승 폭도 1월(0.6%)의 절반에 그쳤다. PCE는 연준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참고하는 핵심 지표 중 하나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면 연준은 긴축정책의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미국의 은행권 위기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둔화되고 있단 신호는 분명 연준의 정책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더구나 국내에선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을 계속 압박하고 있기에 대출금리는 당분간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