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시중은행, 전년 대비 연체율 일제히 상승
국내은행 부실채권비율 2년 9개월 만에 반등
오는 9월 상환유예 종료···“잠재부실 가시화 전망”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카드사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 이어 1금융권인 시중은행에서도 연체율 증가세가 나타나고 있다. 그간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금융지원 조치로 가려졌던 부실 대출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은행의 건전성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28일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연체율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KB국민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연체율은 0.16%로 전년(0.12%) 대비 0.04%포인트 상승했다. 신한은행 역시 같은 기간 연체율이 0.19%에서 0.22%로 0.03%포인트 올랐다. 하나은행도 1년 새 0.16%에서 0.20%로 0.04%포인트, 우리은행은 0.19%에서 0.22%로 연체율이 0.03%포인트 악화됐다.
대출 부실 문제는 4대 시중은행뿐만 아니라 국내은행 전반으로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부실채권비율 0.4%로 전분기 말(0.38%) 대비 0.02%포인트 상승했다.
국내은행 부실채권비율은 2020년 6월 말 0.78%에서 0.71%로 하락한 뒤 9분기 연속 하락세를 지속하며 사상 최저치를 경신해오다 2년 9개월 만에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말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10조1000억원으로 전분기 말 대비 4.5%(4000억원) 증가한 반면 총여신은 8조7000억원 감소했다.
그간 은행권 연체율이 하락세를 이어온 것은 은행의 부실채권 위험이 실질적으로 낮아졌다기보다는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상 대출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등 코로나19 금융지원 등으로 차주들의 연체가 수치상으로 반영되지 않은 ‘착시효과’ 영향이 크다.
코로나19 금융지원 조치가 아직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은행권 연체율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이유는 지난해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크게 치솟으며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커진 탓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잔액 기준 예금은행의 대출금리는 5.06%로 작년 1월 3.12%에서 1.94%포인트 올랐다. 이는 2013년 5월(5.03%) 이후 약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은행권 대출금리도 많이 올랐다”며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불어나면서 상환 능력이 약해진 한계차주가 늘어났고 그 결과 연체율이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3년 넘게 이어져 온 금융지원 조치 중 원금과 이자 상환유예가 오는 9월 말 종료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상환유예 조치를 이용 중인 차주는 올해 9월 말부터는 정상 상환 계획을 마련해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 4월 도입된 금융지원 조치는 작년 9월까지 총 다섯 차례 연장된 바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지원 조치가 3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표면상 드러나지 않은 부실 대출이 많이 쌓여있을 것”이라며 “부실대출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연체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인데 만기 연장과 상환유예 조치가 이어지면서 원래라면 연체채권으로 분류돼야 할 대출도 정상채권으로 분류되는 등 잠재 부실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는 9월부터 상환유예가 종료되면 누적된 잠재부실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연체율 등 은행의 건전성 지표도 지금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