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부진 및 내수 침체 속 국세수입 급감···정부 감세정책도 세수 감소 요인 분석
나랏빚 급증에 재정준칙 국회 논의 관심···여야 시각차 속 전문가도 의견 엇갈려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경기 침체로 재정 수요는 늘고 있지만 세수는 크게 줄어들면서 나랏빚 급증에 대비할 재정준칙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이 순탄하진 않을 전망이다. 여야간 재정준칙을 보는 시각이 상이한데다 국회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열린 공청회에서도 전문가들의 시각이 첨예하게 맞서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수출부진과 내수 침체로 경기둔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세수도 급감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국세수입은 전년대비 6조8000원 줄어든 42조9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올해 총예산 대비 1월 국세수입 진도율은 18년 만에 최저수준인 10.7%였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을 1.6%로 전제하고 세입 전망을 짰으나 정부 예상치보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세입이 예상보다 더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 아시아개발은행과 한국경제연구원은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잡는등 일부 기관에서는 정부 전망보다 낮은 성장률을 예상한다.

정부의 감세 정책도 세수 감소 요인으로 작용한단 분석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개정세법으로 소득세와 법인세, 부동산세 부담이 낮아지면서 올해부터 5년간 세수 감소액이 64조4000억원에 다를 것으로 추산했다. 

세입 환경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재정 역할을 줄이긴 쉽지 않다보니 나랏빚은 점점 쌓여가는 모양새다. 정부는 2022~2026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지난해 1068조8000억원이었던 국가채무가 2026년엔 1343조9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9.7%에서 52.2%로 높아진단 관측이다.

이에 정부 지출을 법적으로 규율하는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한단 목소리가 커진다. 재정준칙은 재정수입과 재정지출, 재정수지, 국가채무 등 재정지표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재정건전화 제도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 대비 3% 이내로 유지하되 국가채무비율이 GDP 대비 60%를 초과할 경우엔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2% 이내로 관리하는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재정에 대한 여야 인식차로 이후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정부와 여당은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도입이 필요하단 입장이지만, 야당에선 추가경정예산안 등 확장재정이 필요하단 판단이다. 

/ 표=정승아 디자이너
/ 표=정승아 디자이너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진행한 재정준칙 도입에 대한 공청회에서도 여야간 인식차가 드러났다. 야당에선 재정준칙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이유가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단 지적을 내놓았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재위에서 재정준칙 논란이 시작된 21대 국회 전반기는 코로나 위기 대응을 위해 재정지출이 많아지는 시기였고, 그로인한 국가부채비율이 급상승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재정당국이 했기에 그걸 규율하기 위해 재정준칙이 필요하단 논리였다”며 “그런데 지금 시간이 지나 국제통화기금(IMF)가 평가한 우리 재정은 균형재정이 돼 있고 어제 피치사 신용평가도 AA-로 우량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재부는 정부의 재정건전화 노력에 힘입어 재정건전성 관련 평가가 개선됐다고 한다”며 “재정준칙의 가장 큰 도입이유가 재정건전성 강화인데 모든게 좋아지고 있다는데 굳이 도입할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나라들이 다 하니까 한다는 논리는 의미없는 논리”라고 지적했다.

같은당 양기대 의원은 “정부가 부채를 잘 관리해 재정건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재정준칙을 만들려고 하는 것에 대해 큰 틀에서는 다 공감한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OECD국가 중 정부 부채는 굉장히 양호한데 가계부채는 하위권으로 나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위해 재정을 풀어 도와줄 필요도 있단 취지의 언급이다. 

반면, 여당에선 재정준칙이 나오게 된 본질적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코로나19, 공급망 위기로 지난 5년간 국가채무가 416조원 늘었다”며 “주요국에 비해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었다. IMF가 2017년에서 2022년 사이 정부부채 추산을 했는데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한국은 40.1%에서 54.1%로 14%나 늘었는데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은 46%에서 53%로 7%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이미 쓰나미를 겪었고 또 쓰나미가 올지도 모르는데 제방을 만들 필요가 없다. 재정준칙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런 논리”라며 “개인 가정들도 소비 지출액에 실링을 두는데 국가가 이런 것을 안 하는 것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같은당 조해진 의원은 “새 정부가 경제정책의 가장 중요하고도 유효한 수단인 재정수단을 스스로 포기하고 옥죄는 결단을 내리는 건 그만큼 장기적으로 재정 안정성에 적신호가 켜졌단 것”라며 “재정준칙은 기재부 권한을 강화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재부 권한을 축소시키는 제도”라고 했다.

공청회에 나온 전문가들도 엇갈린 의견을 내놓았다. 우선 재정준칙이 없다고 당장 큰일이 나진 않지만 안전장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단 주장이 나왔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의 국가채무비율 자체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높지 않고 누구도 위험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앞으로 위험하니까 안전장치를 하자는 것”이라며 “(재정준칙이) 없어도 (재정운용을) 잘하면 있어도 잘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없어서 잘못할 경우를 대비해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준칙을 미리할수록 더 좋은 재정 성과를 가져올 것이란 설명이다.

재정준칙으로 경직된 재정운용이 우려된단 지적엔 “코로나 상황에서 무조건 3% 지킨다는 식으로 재정준칙하는 국가는 전세계 아무데도 없다. 우리도 재정준칙을 보면 예외적 상황에서 신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돼 있다”며 “기재부가 재정을 운영할 때 위기상황에서 엄격하게 지킬 리가 없다. 위기 상황에는 모든 나라 재정준칙이 그 위기에 대응하는 룰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는 재정의 권한이 행정부에서 국회로 점차 넘어오고 있다”며 “대의민주주의 발전 과정도 그랬는데 그 과정에서 정치적 타협 산물로 재정총량 규모가 결정되다보니 국가적 위기를 맞게 됐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합의해 나름의 안전장치를 정하는 길로 갔다”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재정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역사가 발전할수록 선진국들이 갔던 길에 발맞춰 빨리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현재 정부의 재정준칙안이 수치에 매몰돼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단 지적도 있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다른나라의 경우 경제적 실질을 반영할 수 있는 발생주의적 개념의 재정준칙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경제적 실질과는 전혀 상관없이 예산 기술자라면 누구든지 쉽게 달성할 수 있는 현금주의적인 재정준칙을 만들고 있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이런식의 재정준칙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준칙을 만들었을때와 만들지 않았을 때의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며 “다만 지금과 같은 현금주의적 재정준칙은 재정준칙을 만들지 않았을 때의 단점과 재정준칙을 만들었을 때의 단점을 취합한 형태”라고 덧붙였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경제를 쪼그라들게 만들면 안된다”며 “재정 때문에 경제가 쪼그라들면 실제로는 재정건전성을 개선하려고 했던 노력이 재정건전성을 오히려 악화시키게 된다”고 말했다.

여야 시각이 엇갈리는 가운데 공청회에서도 전문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향후 논의가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근 국채 발행량이 많이 늘었고 그로인해 조달금리가 급상승하고 있다”며 “이자율 자체가 올라가고 있어 시장에 안정적 메시지를 보내야 할 필요가 있다. 준칙을 통해 국채 규모에 실링의 씌운다는 메시지를 주게 되면 정부가 추진하는 윅비(세계국채지수) 가입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5년간 (국채가) 많이 늘어났고 비기축통화국은 국채를 줄이고 있는데 우리는 앞으로 그게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보이기에 지금 시점에 도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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