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 조닝’ 관련 용역 착수
용산·세운에 초고밀 개발 계획
난개발·집값 상승 우려도 공존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국판 마리나 원’ 조성을 위해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마리나 원은 싱가포르에 위치한 초고밀 복합개발단지로 ‘화이트 사이트’(용도규제를 없애 초고밀 복합개발이 가능한 개발 방식)가 적용돼 용적률이 1300% 이상이다. 서울시는 최근 화이트 사이트와 비슷한 개념의 ‘비용드 조닝(Beyond Zoning)’ 관련 용역에 착수했다. 비욘드 조닝을 통해 용산과 세운지구 등에서 용적률 1500% 이상의 초고밀 개발을 추진한다는 게 오 시장의 구상이다. 다만 일각에선 집값 상승과 난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새로운 도시계획 체제인 ‘비욘드 조닝’을 실현하기 위한 용역을 이달 안에 착수할 계획이다. 서울시가 지난 1월 최종 확정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안’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인 비욘드 조닝은 기존 용도지역 제도를 전면 개편해 하나의 공간에 다양한 기능이 담기도록 하는 제도다. 제도가 시행되면 업무·상업·주거·녹지 등 정해진 용도지역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고 복합적인 개발이 가능해진다.
특히 비욘드 조닝을 적용하면 용적률 상향 등을 통한 고밀 개발이 가능하다. 오 시장은 지난해 용산정비창 일대와 세운상가 일대에 비욘드 조닝을 적용해 용적률 1500% 이상의 초고밀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용적률 상한이 1500%를 넘길 경우 국내 최고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높이 555m)보다 높은 건물이 들어설 수 있다. 롯데월드타워 용적률은 800% 가량이다.
비욘드 조닝은 싱가포르의 관광 명소 ‘마리나 원’에 적용된 ‘화이트 사이트’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마리나 원은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로 통하는 ‘마리나베이’에 위치한 주거·관광·국제업무 복합개발단지다. 토지이용규제가 전혀 없는 화이트 사이트를 적용해 용적률 1300%(지하 4층∼지상 34층)의 초고밀 복합개발과 수려한 건축 디자인이 가능했다. 비욘드 조닝이 한국판 화이트 사이트인 셈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비욘드 조닝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와 협의해 왔다. 그 결과 지난 1월 국토부가 ‘공간혁신구역’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도시계획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공간혁신구역은 도시혁신구역, 복합용도구역, 도시계획시설입체복합구역 3가지로 구분한다. 이를 담은 내용이 국토계획법 일부개정안으로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서울시는 이번 용역을 통해 비욘드 조닝 적용 구역을 어떻게 선정할지에 대한 기준과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방침이다. 용역 결과를 기반으로 올해 중 공간혁신구역 시범사업 대상지를 선정한다. 이 시범사업 대상지들을 2024년 실제 비욘드 조닝 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앞서 오 시장이 언급한 용산국제업무지구와 세운지구가 유력한 후보지로 점쳐지고 있다. 두 곳 모두 10년 전 오 시장 재임시절 대규모 개발을 추진했지만 미완에 그쳤던 지역이다.
시장에선 비욘드 조닝을 통해 칼로 자른 듯한 천편일률적인 스카이라인이 아니라 다채로운 스카이라인의 조화를 기대하고 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지난 10년간 서울에서 랜드마크라고 내세울 만한 곳은 롯데타워뿐이다”며 “비욘드 조닝 도입은 서울에 개발 활기를 불어넣고 도시 경쟁력을 키우는 초석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규제 완화로 인한 난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서울시는 굉장히 고밀 상태인데 용도제한까지 풀면 여유 공간이 점점 없어져 경관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과도하게 주거·상업 시설을 혼합할 경우 난개발과 주거 환경 악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서울 전역이 아닌 특정 지역으로 제한해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 닭장 아파트 등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개발 호재로 인해 집값이 요동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용산 등은 이미 집값이 고점을 찍은 상급지인데 개발 호재가 더해지면 하락장으로 접어든 부동산 시장에서도 나홀로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앞서 2010~2012년 서울 부동산 침체기에도 이른바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로 엮인 지역은 투기 수요가 몰리며 매매가가 상승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부동산 시장이 침체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주택 공급 등 현안과는 거리가 먼 미관에만 치우친 정책으로 비춰보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