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운전 중 기사 폭행, 블랙박스 영상 삭제 지시 혐의
항소심 “법률 해박한 피고인이 영상 삭제 및 허위진술 요구”
이 전 차관 “상고 준비 할 것···택시기사에 여전히 송구” 입장
봐주기 논란 경찰관은 1·2심 모두 무죄···法 “법리 잘못 이해”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해 7월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해 7월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술에 취해 운전 중인 택시기사를 폭행하고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 증거를 없애라 교사한 혐의로 기소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쟁점이었던 증거인멸을 교사 혐의 역시 유죄로 인정됐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원범 한기수 남우현)는 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과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차관에게 1심과 같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운전자에게 폭행 영상 삭제를 요청한 후 수사를 앞두고 허위진술을 할 것도 요구했다”며 “운전자가 조사 과정에서 영상을 삭제한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전 차관의 요청과 영상 삭제 행위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법률 지식에 해박한 이 전 차관이 동영상 삭제와 허위진술을 요청한 점을 고려하면 증거인멸교사 고의를 인정한 원심 판단은 타당하다”며 “원심판결 선고 이후 별다른 사정 변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난 이 전 차관은 “변호인들과 상의해서 상고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택시기사를 향해서는 “여전히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 전 차관은 2020년 11월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 잠든 자신을 깨운 택시기사의 멱살을 잡으며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발생 이틀 뒤 택시기사에게 합의금으로 1000만 원을 건넨 뒤 차량 블랙박스 삭제와 ‘차 밖에서 폭행이 이뤄졌다’는 허위 진술을 요청한 혐의도 있다.

이 전 차관 측은 동영상 삭제를 요청했으나 결과적으로 거절당했으며, 택시기사는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자발적 동기에서 영상을 삭제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처벌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며 증거인멸교사죄를 부인해왔다.

이 사건은 경찰의 봐주기 논란도 있었다. 2020년 사건 당시 서울 서초경찰서는 택시기사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단순폭행 혐의를 적용해 입건하지 않았다. 운행 중인 대중교통 운전자를 폭행하면 가중 처벌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단순폭행은 반의사불벌죄여서 피해자가 처벌불원을 표하면 수사기관이 처벌할 수 없고, 운전자 폭행은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되는 범죄다.

하지만 약 한 달 뒤 서초경찰서 서장을 비롯한 간부 대다수가 이 전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로 언급되고 있음을 인지했던 정황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재수사가 이뤄졌다. 이 전 차관은 2021년 5월 차관직에서 물러났고, 검찰은 같은 해 9월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로 이 전 차관을 기소했다.

이 전 차관에 대한 봐주기 의혹을 받았던 전직 서초경찰서 경찰관은 특가법상 특수직무유기 및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이 경찰관이 의도적으로 특가법을 적용하지 않은 게 아니라 법리를 잘 못 이해하고 있었다고 봤다. 또 이 전 차관에게 유리하게 수사했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 또한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