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낮아진 재건축으로 선회 검토하는 단지 증가
시공사도 수익성 낮은 사업장 포기하는 사례 늘어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수년 전 재건축 규제강화 기조로 샛별같이 떠오른 리모델링이 다시 지고 있다. 이달 초 정부가 1기 신도시 특별법을 발표하는 등 재건축 규제 완화에 힘을 싣자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이 추진위 해산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시공사가 사업성 저하를 이유로 시공권을 반납하는 이례적인 경우도 부쩍 눈에 띈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거여1단지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는 다음 달 중순 리모델링 해산 결정을 위한 총회를 개최한다. 이 단지는 불과 2개월 전인 지난해 12월만 하더라도 조합 설립을 위한 총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러다 돌연 리모델링에 찬성했던 100여명이 추진위를 상대로 조합설립 찬성 동의서를 철회하며 반대입장을 표했고 결국 해산 결정 총회까지 준비하게 됐다. 추진위가 총회 이후 조합 운영비 명목으로 가구별로 약 1000만원 씩 분담금을 낼 것을 요구했는데 이에 일부 주민이 반감을 가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원자잿값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재건축 규제 완화 등도 리모델링 반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분당과 함께 또다른 1기 신도시로 주목받은 일산에서도 이달 초 정부가 1기 신도시 특별법을 발표한 이후 리모델링에 대한 열기는 식어가고 있다. 일산서구 강선마을14단지두산 일부 소유주들은 최근 재건축으로 선회할 것을 요구하며 리모델링 반대 동의서를 징구 중이다. 용적률 500% 상향과 안전진단 기준 완화를 골자로 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노후계획도시특별법)이 발표되면서 재건축이라는 훌륭한 선택지가 생겼는데 굳이 수익성 떨어지는 리모델링을 택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용적률 500%를 골자로 한 재건축 규제완화는 윤석열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리모델링은 윤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던 1기 신도시 재건축 방안이 답보상태에 있으면서 대체재로 관심을 받아 왔다.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94곳이던 전국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6개월 만인 지난해 6월 131곳으로 급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 들어 분위기는 반전됐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리모델링 분담금 보다 소유주가 얻을 수 있는 시세차익이 더 커야 사업추진의 의지가 생기는데, 인건비는 계속 상승할 수밖에 없고 집값은 떨어지는 추세다 보니 추진의지가 꺾이는 듯 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가 하면 건설사가 확보해 둔 시공권을 손 떼는 이례적인 사례도 생겼다. 리모델링분야 준공실적 1위인 쌍용건설은 최근 군포시 설악주공8단지 리모델링 우선협상대상자 지위와 서울 성동구 신동아아파트 리모델링 시공권을 반납했다. 건설사가 시공권을 확보하고 추후 등 돌리는 사례는 보기 드물다. 회사 측은 이에 대해 “보수적으로 검토해 수익성이 나는 곳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리모델링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단순히 수익성 상승만 기대하고 재건축으로 급선회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리모델링에 비해 상당한 장기전이 될 수 있어서다. 국토부는 재건축 연한인 30년보다 짧은 20년을 특별법 적용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지만 사업허용 연한이 준공 후 15년인 리모델링에 비해 재건축을 시도하기까지 더 오래 걸리는 건 마찬가지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리모델링이 보편화되는 상황에서 재건축 규제 완화가 발표되니 주민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부분이 있다”며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세대수 증가 등을 담은 리모델링 특별법 등 제도개선도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