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역외보조금 규제 7월부터 시행···정부 지원금 받은 기업 M&A·공공입찰 제재
소급규정 감안시 늦은 대응 지적···“기업, 보조금 관리 내부시스템 구축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유럽연합이 시행할 역외보조금 규제로 우리 기업 부담이 커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EU가 판단하는 보조금 범위가 연구개발 지원금과 세제 및 대출혜택 등 광범위하고 우리 기업이 EU 회원국이 아닌 외국에서 받은 재정적 지원도 보조금으로 볼 수 있단 분석이다. 소급규정을 감안했을 때 대응이 한 발 늦은감이 있어 정부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단 조언이 제기된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이 오는 7월부터 시행하는 역외보조금 규제 방안은 EU에 속하지 않는 국가 기업이 정부 및 공공기관으로부터 과도한 보조금을 받고 EU 내 기업 인수합병이나 공공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불공정 경쟁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역외 보조금 규제는 EU 내 기업결합과 공공조달을 추진하는 기업이 적용 대상이다. 매출, 역외보조금, 조달가액 등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사전신고와 집행위 직권조사를 시행해 시장왜곡 여부를 심사한다. 재정적 기여와 혜택, 특정성을 모두 충족하는 보조금이 존재할 경우 시장왜곡 여부에 대한 심사에 들어가 왜곡 효과와 보조금에 따른 긍정효과를 비교해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역외보조금 규제는 보조금에 있어 외국에 비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는 EU 기업들을 보호하고, 보조금을 등에 업고 무차별 진출하는 외국 기업에 의한 EU 시장 내 경쟁 왜곡을 막겠다는 취지로 중국을 겨냥한 정책이란 게 대체적 분석이다.
그러나 EU가 아닌 모든 국가 기업을 대상으로 적용되는 규제인 만큼 우리나라 산업계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기업에 제공하는 모든 재정적 지원을 사실상 보조금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이 EU 내 기업의 인수합병에 투자하거나 공공조달 입찰에 참여하기가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
정부도 EU 역외보조금 규제가 우리 기업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보고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서울 강남구 무역센터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린 ‘EU 역외보조금 규정 관련 기업설명회’에서는 삼성, LG 등 주요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EU 역외보조금 규정 주요 내용과 대응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소급규정을 감안했을 때 우리 대응이 늦은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정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신고 관련 사항은 10월부터 시행하지만, 신고 당시부터 3년을 소급해 3년간 받은 보조금을 신고해야 한다. 직권조사 관련해서는 5년치까지 볼 수 있도록 돼 있다. 지금 당장 신고하는 건 아니지만 M&A나 공공기관 참여를 생각하는 기업 입장에선 지금 준비를 시작해선 늦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정부로부터 받는 R&D 지원금,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출 금리 등 정부 지원,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기업들이 받는 세제 혜택 등의 경우 EU가 보조금으로 볼 가능성이 있단 분석이다.
EU가 보는 보조금 범위가 기업이 속한 국가에 한정되지 않는단 점도 강조했다, 우리기업이 EU 회원국이 아닌 외국 정부나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은 보조금도 해당된다는 것이다. 장 변호사는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받는 부분 뿐 아니라 EU 회원국이 아닌 다른 보조금 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내부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며 “사전신고 전에 보조금 요건을 충족하는지, 보조금 요건을 충족할 경우 EU 역내시장의 경쟁을 왜곡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역외 보조금 규제가 겨냥하는 산업은 철강과 알루미늄 등 기초산업과 인프라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조성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현재까지 보조금으로 판단된 항목들에 대해선 신고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처리하는게 효율성과 신뢰도 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며 “EU에서 인수합병을 계획하는 기업들은 주식매매계약 등 클로징 조건에 역외보조금 심사 절차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며 이에 대한 심사 절차를 인수합병 거래의 타임라인에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들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으로 200개 회사가 넘는데 이 회사의 보조금을 EU에서 인수합병 할 경우에 내란 취지다. 과징금 같은 경우 매출액의 몇% 식으로 정률적으로 한다. 보조금 대상을 2억5000만달러 식으로 정액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정률적으로 해야 한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의 경우 완제품도 많지만 부품도 제공하는 회사이기에 우리 고객이 공공조달이나 인수합병을 할 때 전세계 삼성전자 반도체에서 받은 반도체 내역을 제공해야 하는지 거꾸로 생각해야 할 경우도 우리는 있을 수 있다”며 “삼성전자가 고객사에게 제출하는 게 맞냔 고민을 하게 하는 내용이다. 정부에서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5대 기업 관계자는 “부담스러운 내용이 많다. 역외보조금 규정 관련한 내용을 계열사에 함께 공유해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역외보조금 규제가 우리 기업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업계 의견을 적극 수렴해 대응책을 마련하겠단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달 6일까지 우리 의견을 EU에 제출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영업 기밀 같은 부분을 보호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