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측, 신용등급·기업구조 여부에 수요 갈려
현대건설·SK에코플랜트 대형사 잇따라 흥행
한신공영·HL D&I한라·한국토지신탁, 미매각 속출
“건설사 회사채 투자심리 회복, 올해 분양 실적에 달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건설사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회사채 발행에 나선 가운데 대형·중견 건설사 간 희비가 엇갈리는 모양새다. 신용도가 높거나 뒷배가 든든한 그룹 계열 대형사는 수요예측에서 잇따라 대규모 투자 수요를 확보한 반면 신용등급이 비우량인 중견사는 참패를 이어가고 있다. 중견사에 대한 투자 심리가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자금조달 양극화가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GS건설(A+)은 전날 2년물 1500억원 수요예측에 219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미매각이 발생하면 산업은행이 들어오기로 했으나 시장에서 물량을 모두 소화했다. 시장에서 건설채에 대한 우려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으나 순조롭게 발행을 마친 모양새다. GS건설은 지난해 시공능력순위 5위의 대형 종합건설회사다. 2005년 LG그룹에서 계열분리돼 GS그룹으로 편입됐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허창수 GS그룹 회장(8.3%) 등 특수관계자가 약 23.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GS건설보다 먼저 수요예측에 나선 현대건설은 높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15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지난 20일 수요예측을 진행한 결과 3200억원의 자금이 모집됐다. 만기물별로 2년 만기 회사채 700억원에 1200억원, 3년 만기 회사채 800억원에 2000억원이 몰려 모집액 대비 2배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현대건설이 공모채 발행시장을 찾은 건 2021년 6월 이후 처음이다. 시장에선 신용등급이 높아 수요가 몰릴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앞서 현대건설의 신용등급은 AA-로 대형 건설사 중 단연 높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 계열 건설사라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SK에코플랜트 역시 지난 15일 진행한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모집 물량의 5배 이상의 자금을 받아내며 흥행에 성공했다. 1000억원 규모 자금을 모집했는데 508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SK에코플랜트는 발행액을 2000억원으로 증액했다. 업계에선 SK에코플랜트가 신용등급이 ‘A-’로 낮은 편이지만 SK그룹 계열사라는 후광 덕을 봤다는 평가다. 아울러 2020년 이후 추진 중인 환경, 연료전지, 해상풍력 등 신규 사업이 자본시장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중견사는 수요예측에서 참패를 이어가고 있다. 한신공영(BBB0)은 지난 21일 진행한 1년물 500억원 규모 수요예측에서 매수 주문이 50억원뿐이었다. 7.5~9.5%의 높은 금리를 제시했는데도 사실상 외면받았다. 한신공영은 한국신용평가로부터 ‘BBB0·부정적’, 한국기업평가로부터 ‘BBB+·부정적’ 신용등급과 전망을 받고 있다. 고금리 BBB등급에 대한 투자 수요가 상당해 수요예측에서 의외의 흥행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아직 불안한 건설사에 대한 투자 심리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한신공영은 민간 건축 부문 의존도가 높은 가운데 지난해 이후 분양을 시작한 다수 현장에서 저조한 분양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중견사 HL D&I한라(BBB+)는 무려 9%대의 금리로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려 했으나, 투자 수요는 140억원에서 그쳤다. 높은 금리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 수요를 찾기 어려웠고, 미매각 채권은 결국 산업은행이 인수해 갔다. 또 한국토지신탁(A-)은 800억원 모집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560억원만 들어와 미매각이 발생했다.
업계에선 비우량 등급인 신용등급 A급 이하 회사채 발행시장의 한파가 당분간 계속돼 중견사들의 자금조달 환경이 악화일로를 걸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BBB급 중견 건설사 중에서 자체사업이나 PF우발채무 관련 부담이 큰 업체들의 경우 당분간 어려운 자금조달 여건이 예상된다”며 “계열 지원 여력이 제한적인 가운데 분양경기 저하에 대한 대응수단이 충분하지 않아 직접 금융시장을 통한 조달 여건 개선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건설사 회사채 투자심리 회복 여부는 올해 분양 실적에 달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은 원자잿값과 금융비용 상승에 따른 수익성 저하, 분양 실적 부진, 공사대금 회수 지연 등에 따른 운전자금 부담을 안고 있다”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차입금 차환, 운전자금 대응 등을 위한 외부 자금 조달이 절실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둔화에 따른 미분양 추세가 건설사 현금흐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