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양사 통합 결정 7월께로 미뤄···심층조사 돌입하기로
대한항공, 유럽·미주 알짜노선 더 뺏길 듯···경쟁력 악화 우려
아시아나, 재무구조 악화에 추가 자금 투입 절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 기업결합심사를 내년으로 연기했다. / 사진=김은실 디자이너
 / 사진=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당초 업계에선 작년말이나 올해 초에는 합병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해외 경쟁당국에서 결합심사를 지연시키며 합병이 늦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유럽연합(EU)이 양사 합병 관련 2단계 심사에 돌입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오는 7월은 돼야 심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여 합병도 그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7일(현지시각)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 관련 심층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앞서 EU는 대한항공이 제출한 기업결합 신고서를 바탕으로 1단계 심사를 진행했지만, 추가로 확인할 요소들이 많아 최종 단계인 2단계 심사에 돌입하기로 했다.

EU 집행위는 심층 조사 이유에 대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한국 1, 2위 규모의 항공사로, 양사 합병시 한국과 유럽경제지역 사이 4개 노선에서 여객 서비스 부문 경쟁력 악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문제가 되는 노선은 파리, 프랑크푸르트, 로마, 바르셀로나로 알려졌다. 이들 노선의 경우 양사 점유율이 60%를 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2단계 심사 과정에서 내용을 수정 보완해 시정조치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이후 EU 집행위는 오는 7월 5일 양사 합병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합병이 지연되면서 양사 모두 초조한 모습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해외 경쟁당국이 독점 우려에 대해 지적하면서 유럽, 미주 노선 등 그동안 강점을 가졌던 노선을 재배분해야 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도 양사 통합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독과점 우려가 예상되는 노선에 대해 운수권 및 슬롯 이전을 요구했으며, 해외경쟁당국들도 같은 이유로 비슷한 노선을 타 항공사에 넘기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위는 양사 통합으로 인해 국제선 65개, 국내선 22개 노선이 중복되며 이 중 국제선 26개 노선, 국내선 14개 노선은 경쟁 제한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공정위는 공항 슬롯 관련 경쟁 제한이 있는 26개 국제선 및 8개 국내선에 대해 다른 항공사들이 증편할 경우 반납할 것을 지시했다. 운수권은 유럽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로마, 이스탄불과 중국 장자제, 시안, 선전, 베이징 그리고 시드니, 자카르타 등 총 11개 노선을 다른 항공사로 이전하도록 했다.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양사 통합 관련 공정위 조치 사항.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이번에 EU 집행위도 파리, 프랑크푸르트, 로마, 바르셀로나 노선에 대해 문제를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양사 유럽 노선 점유율은 파리 60%, 프랑크푸르트 68%, 로마 75%, 바르셀로나 10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주 노선의 경우도 인천~뉴욕·LA는 양사 점유율이 100%에 달하며, 호놀룰루 83%, 샌프란시스코 69%, 시애틀 64%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EU와 미국 모두 추가 검토에 돌입하면서 운수권 및 슬롯을 더 내줘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경우 대한항공 입장에선 아시아나와 합병하더라도 알짜노선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합병 시너지 효과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분기 대한항공 지역별 매출 실적을 살펴보면 미주 노선이 29%로 가장 높았고, 유럽 노선도 19%에 달해 동남아(21%)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일본, 중국, 동남아의 경우 이미 저비용항공사(LCC)가 다수 운항하고 있어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시아나도 상황은 비슷하다. 아시아나도 독점 노선을 뺏기게 될 경우 경쟁력 악화가 우려된다. 아시아나도 대한항공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유럽 노선 매출 비중이 각각 19%, 15%에 달할 만큼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시아나는 심사가 길어질 경우 악화된 재무구조가 발목을 잡는다. 아시아나는 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 부채비율이 1만%를 넘기면서 자본잠식에 빠졌다. 지난 4분기에는 역대급 영업이익을 냈지만 별도 기준 부채비율이 1628%에 달해 여전히 재무 상태가 취약하다.

아시아나 입장에선 합병 이후 대한항공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수혈받아야 재무구조가 개선될 수 있는 상황이다.

양사 합병이 무산될 경우 아시아나는 재매각에 나서야 하는데 아시아나를 인수할 만한 기업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앞서 아시아나가 매각에 나섰을 때에도 국내 기업 대부분이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이후 HDC 현대산업개발과 인수를 추진하다가 이마저 실패로 돌아간 후 대한항공이 최종 인수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재매각이 진행될 경우 새 인수자가 악화된 재무구조 등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앞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합병 결정 당시 구조조정은 없다고 못 박은 바 있다.

일각에선 아시아나가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자회사를 매각하고 외부 자금을 수혈해 독자생존을 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이 최종 무산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면서 “지금 미국과 EU가 추가 검토에 나선 것은 합병 승인을 불허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국 항공사들과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요소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늦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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