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기둔화 공식화···심각한 수출 부진에 경제 전반 위기감 고조
중국 반도체 수출 전망 주목···“리오프닝해도 재고량 많아 단가 약세”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부가 경기둔화를 공식화하면서 수출 부진으로 인한 경제위기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반도체가 수출 회복의 열쇠를 쥐었단 분석과 함께 주요 수출국인 중국시장은 재고가 많이 쌓인 현 상황을 감안했을 때 리오프닝 이후에도 단가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국 수출은 7월 이후 본격 회복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이날 발표한 ‘2월 최근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부진 및 기업심리 위축이 지속되는 등 경기흐름이 둔화됐다”고 밝혔다.
전달에 비해 부정적인 표현이 좀 더 강해졌다. 기재부는 지난해 6월 이후 경기둔화 우려를 경고해왔으나 이번엔 부정적 표현이 좀 더 강해졌다. 지난달엔 ‘경기둔화 우려가 확대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날 발표에선 ‘경기가 둔화됐다’고 공식화했다. 경제 버팀목인 수출도 일시적 뉘앙스의 ’감소‘에서 추세적 단어인 ’부진‘으로 바뀌었다.
실제 최근 수출 실적은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감소하며 부진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16.4% 감소한데 이어 이달도 10일까지 하루 평균 수출액이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14.5% 줄었다.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수출 부진이 더 심한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4분기 주요국 수출증가율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전년 동기대비 9.9% 감소한 반면, 미국은 8.2%, 이탈리아는 3.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1.9%)과 일본(-4.6%), 중국(-6.9%)는 감소세를 보였으나 우리나라보다는 그 폭이 작았다.
수출이 부진하면서 무역수지도 악화하고 있다. 현 상황이 지속되면 조만간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서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부는 올해 210억달러 경상수지 흑자를 예상하지만 1월에만 무역수지가 126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며 “이런 추세로 두세 달만 지나면 경상수지가 적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 환율상승과 자본유출로 인해 주가와 부동산 등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이러한 위험요인을 해소하려면 수출을 늘리는 수밖엔 없다”고 말했다.
수출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요인은 반도체 부진이 꼽힌다. 1월 반도체 수출은 메모리반도체 가격하락과 글로벌 수요 위축이 겹치며 지난해 같은달보다 44.5% 급감한 60억 달러에 그쳤다. 이는 전체 수출 감소액의 52%에 달하는 수준이다.
국가별로는 대중국 수출 부진이 두드러진다. 지난달 31.4% 줄어들며 8개월 연속 감소했다. 전체국가 중 중국 수출 비중은 19.8%로 2004년 이후 19년 만에 20% 밑으로 내려왔다. 중국 시장 수출이 위축도 핵심엔 반도체가 자리잡고 있다. 코로나 봉쇄에 따른 반도체 수요 급감이 대중국 수출액을 끌어내렸단 분석이다.
박재곤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대중국 수출액 중 반도체 비중이 25~30% 정도이고 중국에서 수입하는 총량 중 15% 내외가 중국 반도체”라며 “(대중국) 반도체 수출입이 부진하면 우리나라 전체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말했다.
대중국 반도체 수출액이 줄어든 것은 수요 물량이 감소하고 단가마저 크게 떨어진 영향이 크단 분석이다. 우리는 주로 높은 기술을 요하는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고 수입은 보통 낮은 레벨의 제품을 한다. 우리는 중국산이 있어야 자동차용 반도체를 만들 수 있고 중국도 고급 반도체가 있어야 자신들이 필요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박 위원은 “지난해 기술 수준이 높은 제품에 대한 수요가 많이 감소하다보니 단가가 많이 낮아졌다. 코로나로 중국도 제품 생산이 많이 줄면서 한국산 반도체를 수입할 필요가 많이 없어졌다”며 “반면, 우리가 중국에서 수입하는 반도체량은 거의 그대로였고 금액도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가 회복되면 수요가 늘면서 한국산 반도체 수입량은 증가할 전망이다. 다만, 그간 물량이 많이 쌓인 점을 감안하면 단가가 빨리 오르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단가가 약세를 지속하면 대중 수출액 증가에도 제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박 위원은 “단가가 빨리 오르진 않을 것이다. 다만, 중국 내 필요한 양에 대한 수입은 앞으로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며 “그러면서 단가도 올라갈 것이다. 과거만큼은 아닐지라도 수출액도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리오프닝한다고 대중국 수출이 바로 회복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박 위원은 “중국은 빠른시일 내에 회복된다고 하지만 3~4월까지는 우리 수출이 크게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6~7월 정도면 중국 내 제조업 생산량 같은게 거의 예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며 “단가 문제도 있어 수출량은 예전 만큼은 안되겠지만 70~80% 수준 가까이는 갈 것”이라고 봤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은 “지금 무역적자, 수출 위축의 가장 큰 원인은 대외 경기 부진에 있다”며 “올해 하반기 정도 되면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면서 수출 위축 상황도 해소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