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말 기준 요구불예금 588.6조원···한달 만에 35조원 이상 ‘급감’
요구불예금 감소폭 확대···예·적금도 함께 줄어
주식 반등 기대감에 은행권 자금 증시로 이탈···은행권 수익성 둔화 우려도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최근 시중은행의 수신고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특히 저원가성 예금으로 꼽히는 요구불예금 감소세가 눈에 띄게 가팔라졌다. 지난해 금리 인상으로 요구불예금에 있던 대기성 자금이 예·적금에 몰렸던 것과는 달리 최근에는 예·적금과 요구불예금이 모두 줄어들면서 은행의 자금 이탈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총수신 잔액은 1870조581억원으로 전월(1877조4443억원) 대비 7조3862억원 줄었다.
수신 종류별로 살펴보면 특히 요구불예금 잔액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지난 1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 잔액은 588조6031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35조9835억원 급감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감소폭이 18조5686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증가폭이 17조원 넘게 확대된 것이다.
눈에 띄는 점은 1월 말 기준 정기예금(822조2500억원)과 정기적금(36조8367억원)도 모두 한달 새 각각 6조1866억원, 3943억원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에도 요구불예금은 감소 추세를 나타냈지만 당시에는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은행권의 예·적금 금리가 크게 오른 영향이 컸다. 그 결과 예·적금으로 돈이 유입되면서 요구불예금이 줄었지만 예·적금 잔액은 증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예·적금과 요구불예금 등 수신 상품 전반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등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의 은행권 요구불예금 급감 현상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역머니무브’가 주춤한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해 기준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주식·암호화폐 등 위험자산에 투자됐던 자금이 은행 예·적금으로 돌아오는 역머니무브 현상이 심화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글로벌 금리 인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은행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국내 월평균 투자자예탁금(장내파생상품 거래예수금 제외)은 49조2749억원으로 집계됐다. 투자자예탁금은 지난해 2월부터 감소세를 이어가면서 12월 연중 최저치(46조4484억원)를 기록한 이후 1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은행권 관계자는 “예금의 경우 금리가 내려감에 따라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신규 유입이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요구불예금도 투자자들이 현재 기준금리가 어느 정도 고점에 도달했다고 예상하면서 주식 반등을 기대하고 이에 따라 조금씩 머니무브가 이뤄지면서 은행권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은행 입장에서는 요구불예금이 줄어드는 현상이 달갑지 않다는 점이다. 요구불예금은 언제든지 입출금이 가능한 상품으로 금리가 사실상 제로(0)에 가까워 조달비용이 적게 드는 저원가성 예금으로 꼽힌다. 저원가성 예금이 줄어들면 은행의 조달비용 부담이 커지게 되고 이는 수익성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요구불예금이 줄어들면 그만큼 낮은 금리로 조달해온 자금이 빠져나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은행의 수익성 측면에서 좋지 않다”며 “최근 은행권의 예대마진을 둘러싼 비판도 커지고 있어서 올해 순이자마진(NIM) 등 수익성 지표가 둔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