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국산화율 20%···소부장 평균 자립화율 30%보다 낮아
연구개발 지원·세제혜택 등 인센티브 도입 필요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주요국들이 반도체 산업 대규모 지원책을 꺼내드는 가운데 ‘장비 국산화’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지정학적 위기 심화와 공급망 불안정 등의 요인으로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장비 자급률을 높이는 게 핵심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 통제에 나서면서 핵심 설비 국산화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는 분위기다. 최근 만난 장비사 임원은 “2019년 일본 수출규제 사태가 장비 분야에서 재현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 라인이 ‘올 스톱’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로 추정된다. 30%대 수준인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 자립화율과 약 50%인 반도체 소재 국산화율에 비해 현저히 낮다. 보고서는 주요 장비 70% 이상을 미국·일본·네덜란드에서 수입하고 있어 국내 반도체업계가 지정학적 리스크에 취약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장비 국산화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국내 소자 기업이 국산 장비 활용 폭을 넓혀야 한다. 다만 기업은 장비 기술력과 비용 등을 모두 감안해 가장 효율성이 높은 업체의 설비를 구매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상당수 장비를 미국과 일본의 글로벌 장비사에 의존하고 있지만, 국산화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7월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 합동으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발표하고 기술 개발과 설비투자를 가속화해 오는 2030년까지 소부장 자립화율을 50% 수준으로 상향하겠단 목표를 제시했지만, 연구개발(R&D)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산 장비 채택률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소부장 업계에서 거론하는 방안은 인센티브 제공이다. 국산 장비를 많이 활용하는 기업에 세제혜택을 제공하면 자립화율을 높일 수 있단 것이다. 장비업계는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이 미국·일본과 근접한 수준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이같은 정책이 시행된다면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경북 구미에 위치한 SK실트론 공장을 방문해 “국가간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고 글로벌 공급망도 블록화되고 있어 우리 반도체 산업의 핵심인 소부장 국산화가 시급하다”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힘을 합쳐 이를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처럼 국산화율 상향은 민관이 함께 노력해야 하는 과제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자급화율을 점진적으로 높여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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