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토위 전체회의서 여당안 상정···화물연대 “안전운임제 취지 훼손” 반발
“위원회 구성 변경 화물기사 의견 위축”···야당안 본회의 직회부 가능성도 주목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국회가 당정이 발의한 화물차 안전운임제를 대체할 법안 논의를 시작했다. 안전운송운임 등 화주책임과 표준계약서, 처벌 수위 등을 놓고 노동계를 중심으로 안전운임제 본질을 훼손하는 내용이란 비판이 나와 입법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국회 내에서는 야당 주도로 통과한 안전운임제 연장 법안의 본회의 직회부 가능성도 열려있어 여야간 협의 과정이 주목된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들을 상정했다. 상정된 화물자동차법안 중에는 최근 여당에서 발의한 개정안도 포함됐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사실상 당정이 의견접근을 본 내용으로 화주가 운송사에게 주는 운임은 가이드라인으로 권고하고 운송사가 차주에게 지급하는 운임은 강제토록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안전운임제를 표준운임제로 명칭을 바꾸고 유가 변동시 운임도 함께 변경하는 표준계약서를 도입하며 안전운임위원회 사무국을 설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화물기사가 구매한 화물차를 운송사 명의로 등록해 영업용 번호판을 받고 일감을 배정받는 지입제에 대한 대응 방안도 담았다.
이달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화물운송사업 정상화 방안과 맥이 닿아있지만, 이날 함께 상정된 야당 법안들(박영순·조오섭·최인호·심상정·강준현·이소영 의원안)이 기존 안전운임제 부활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법안 상정을 계기로 국회 논의가 시동을 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노동계에서는 반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는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안이 안전운임제 취지를 부정한다고 비판하며, 기존 안전운임제 연장을 요구했다.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20년의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진 안전운임제를 일몰시키고 화주 주장으로만 채워진 표준운임제에 화주책임은 사라졌다”며 “화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위원회 수를 조정하고 안전이라는 입법취지는 사라지고 안전이 사라진 자리에는 화주자본의 합법적 탐욕이 차지했다”고 말했다.
노동계에서는 여당안이 화주가 지불하는 안전운송운임을 비강제화하면서 화물운송종사자들이 적정운임을 보장받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라고 본다. 안전운임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화주 책임 부과가 필수적이란 것이다. 화물운송현장에서는 화물기사들이 실제 받기로 한 운임보다 적은 경우 운수사에 항의하면 운수사는 ‘화주가 준 만큼 줬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화주는 직접 계약 당사자가 아니므로 항의가 어려운 실정이란 지적이다.
정부여당이 처벌조항을 완화하고 안전운임위원회 구성을 변경하는 부분도 문제가 있단 시각이다. 안전운임제 시행 3년간 수천건의 제도 위반 신고에도 불구하고 실제 처분까지 집행된 경우가 2%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제도 위반에 대한 관리 감독 강화가 필요한 현실에 맞지 않는 방안이란 지적이다.
정부는 안전운임위 구성을 기존 공익4, 화주3, 운수사3, 차주3에서 공익6, 화주3, 운수사2, 차주2로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안대로 위원회 구성을 변경하면 운임 산정 과정에서 당사자인 화물노동자의 발언권을 축소하고, 실제 현장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전문가가 절반을 차지하면서 운임 산정에 현장 실태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우려한다.
유가와 운임을 연동한 표준계약서를 두고는 참고 가능한 수준의 가이드라인에 불과해 위반시 제재가 어렵기에 현장에서 실효성을 갖기 어렵단 비판이다. 이미 표준 위수탁계약서를 우선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유가 기준 제시가 동반된 안전운송원가를 공표하는 등 비슷한 제도가 있음에도 현장에서는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있단 것이다.
정부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려면 야당과 노동계와 접점을 찾아야 하지만, 과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 관계자는 “정부가 당초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약속했다가 화물연대 파업을 빌미로 입장을 뒤바꿨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국토위에서 계류된 안전운임제 법안들을 직회부할지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토위는 지난해 12월 야당 단독으로 안전운임제 일몰 연장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된지 60일이 지나 국토위에서 투표를 통해 본회의로 직회부할 수 있다. 이날 국토위 전체회의에서도 일부 의원은 안전운임제 법안의 본회의 직회부 관련 언급이 있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김민기 국토위원장은 “안전운임제 법안은 우리 위원회에서 직회부를 할 수 있는데 양당 간사 협의를 거치도록 하겠다”며 “여러 가지 사정을, 모든 것을 열어놓고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안전운임제가 폐지되면서 일선 화물기사들은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송천석 화물연대 부산지역본부장은 “화주기업들이 다음 계약부터는 최저입찰을 할 테니 준비하라고 운송사에 전화를 돌렸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발빠른 운송사는 이미 덤핑계약을 시작했다”며 “이제 곧 1월 운송료가 지급될텐데 명세서에 얼마가 찍혀있을지 몰라 두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