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재정증권 발행으로 재정 조기집행 본격화
전문가, 경기 둔화 상황 속 불가피한 선택 분석
“긴축 기조와 충돌” vs “물가 부담 수준 아냐”
“추경 부적절···정치 일정상 하반기에 나설 것”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 기조가 상반기 재정 조기집행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경기 하방 압력이 큰 상황에서 재정을 미리 투입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단 지적이다. 그러나, 정치적 요인으로 올 하반기 추경이 현실화 할 가능성은 높단 분석이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이달 중 네 차례에 걸쳐 4조원 규모의 63일물 재정증권을 발행한다. 지난 2일과 9일 각각 1조원 규모의 재정증권을 발행한 데 이어 오는 16일과 23일에도 같은 규모의 재정증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재정증권은 일시적으로 발생한 국고 부족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금융시장에서 발행하는 유가증권으로 보통 재정을 조기에 집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실제 정부는 올해 중앙재정 총 지출예산 240조원 중 65%인 156조원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한단 계획이다. 지방재정은 60.5%, 지방교육재정은 65%를 각각 조기 집행한단 방침이다. 이같은 예산 조기집행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간 재정 조기집행 목표치는 꾸준히 상승했다. 2002년 제도 도입 이후 초기에는 50% 중후반으로 설정하다가 2010년대 들어 60%정도로 올랐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였던 2020~2022년엔 더욱 상승해 목표치가 62~63% 수준이었다.
정부가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상반기 예산 조기집행 계획을 세운 것은 올 상반기 경기 둔화조짐이 심상치 않단 판단에 따른 대응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은 “정부가 재정 전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하반기 재정을 상반기로 당겨서 집행한다는 것은 경기를 방어하고 싶은 목적이 있는 것”이라며 “올해 경기 흐름이 상저하고란 인식하에 상반기에 경기를 좀더 뒷받침하겠단 뜻”이라고 말했다.
다만, 예산 조기집행이 반드시 상반기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상반기 성장률 전망치는 3.0%였으나 실제치는 2.9%였다.
현재 경제상황을 봤을 때 올해 재정 조기집행 방향성은 대체로 적절하단 분석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작년에 금리를 올린 것이 시차를 두고 올 상반기 경기 침체를 심화시킬 것이 예상되기에 상반기에 재정을 조기 집행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재정 조기 집행을 하기엔 현재 물가 상황이 여전히 불안하단 우려도 나온다. 특히, 최근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이 재정 조기 집행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단 지적이다. 김 교수는 “공공요금을 올리면 물가가 높아지면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경기가 또 다시 침체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며 “공공요금을 올리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인상의 득실을 따져보면 늘어나는 손실이 더 크기에 시기와 폭을 잘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요금 인상 시기를 연기하거나 폭을 줄일 필요가 있단 설명이다.
다만, 정부가 예산을 당겨쓰는 수준이 물가에 부담을 줄 정도로 크진 않단 견해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공요금 인상으로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재정 조기 집행이 적절하지 않단 얘기는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65% 정도의 조기 집행은 큰 부담이 아니다. 아예 액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기에 취약계층이나 중산층 일부 지원을 위한 예산을 약간 늘리는 것 정도는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 내에서는 예산 조기집행에 더해 난방비 대란 대책 등 이유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필요성이 제기된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민생 지원을 위한 30조원 추경 필요성을 제기했다. 다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내부에서는 정부가 돈을 풀었을 때 물가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고민이 여야를 막론하고 제기된다.
경제 전문가들도 현 상황에서 재정 조기집행을 넘은 추경 편성은 위험하단 지적을 내놓는다. 정 실장은 “통화당국이 계속 금리를 올려 여전히 높은 금리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다시 경기를 부양시키는 정책은 상충된다”며 “그런 점에서 추경은 지금 상황에선 할 만한 여건이 충분히 갖춰져 있진 않다고 본다. 전체 재정을 유지한 상태에서 경기 부양보다는 취약계층 위주로 좀 더 편성하는 식으로 물가에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 하에서 재정을 가져가는게 현재로선 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성 교수는 “예산 조기 집행은 괜찮지만 추경은 곤란하다. 조기 집행은 쓰기로 한 예산을 조금 빨리 집행하는 의미이기에 유동성을 앞당겨 쓰는 효과는 있지만, 추가적으로 물가를 자극하는 효과는 크다고 보기 어렵다”며 “만약 추경을 한다면 금액을 약간 늘리는 정도는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전국민 난방비 지원과 같은 대규모 추경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올 하반기엔 정부가 추경을 편성할 가능성이 높단 전망이 나온다. 내년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도 경제 정책을 마련하는데 있어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국민 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정부여당이 선거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인해 하반기로 갈수록 정부 내 경기부양 압력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실제 정부도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에 초점을 두겠단 방침을 제시하고 있다. 김 교수는 “금리 인상으로 인한 물가 효과는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에 하반기가 되면 물가가 3%대로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에 정부가 추경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