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원 한도로 영구채 발행 결정
'건전성 악화' 농협생명에 1.1조원 투입
올해도 농협생명등 계열사 지원 필요
영구채 발행 금리 하락세는 '긍정적'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NH농협금융지주가 새해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을 통해 자본확충에 나선다. 지난해 자본건전성에 문제가 발생한 농협생명을 구해내기 위해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내려보낸 탓에 추가 자금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올해 회사채 시장이 안정을 찾고 있는 만큼 자본확충에 따른 이자부담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 이사회는 최근 4000억원 규모의 한도로 영구채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5년, 10년 중도상환옵션(콜옵션)이 붙은 형태로 영구채를 찍어낼 계획이다. 금융지주가 발행하는 영구채는 상각형 조건부자본증권이다. 만기가 없고, 발행사가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되면 투자금을 전액 돌려받을 수 없다는 조건이 있다. 이러한 손실흡수력 때문에 영구채로 조달한 금액은 금융지주의 자본으로 인정된다.
농협금융이 자본확충에 나서는 원인 중 하나는 농협생명 때문이다. 농협금융은 자본건전성에 문제를 일으킨 농협생명에 지난해와 올해 초까지 1조1000원의 자금을 내려보냈다. 작년 3월, 5월 각각 진행된 농협생명 유상증자에 참여해 총 6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9월에는 농협생명이 발행한 2500억원의 영구채를 모두 인수했고, 지난달 말 2500억원의 영구채를 추가로 매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모기업으로부터 받은 투자금(약1조1120억원) 만큼을 농협생명에 투입한 셈이다. 당초 농협금융은 최대 계열사인 농협은행에 자금을 투입하기 위해 지난해 초 중앙회로부터 돈을 받았다. 이에 비슷한 시기에 농협은행은 1조2000억원 규모의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지주로부터 수혈받았다. 하지만 금융지주는 농협생명으로 인해 부담이 두 배로 커졌다.
농협생명은 올해 도입되는 새 제도인 신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아래서도 낮은 자본건전성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기존 제도인 지급여력비율(RBC)이 150%를 하회하는 보험사는 측정 방식이 달라지면 더 낮은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본다. 농협생명은 작년 3월 말 금리 급등의 직격탄을 맞아 RBC가 당국 권고치인 150% 아래로 하락한 바 있다.
특히 농협금융은 농협생명이 금융당국에 ‘경과조치’ 적용을 신청하는 일은 막아야하는 상황이다. 이 조치는 당장 킥스 도입이 어려울 정도로 자본건전성 상태가 좋지 못한 곳에 유예 기간을 주는 것이다. 보험사 입장에선 경과조치를 적용하면 부담은 줄어든다. 하지만 회사가 사실상 금융당국의 관리 안에서 이뤄지는 점이 문제다. 배당정책이 크게 제약되고 자본건전성 개선 상태를 지속적으로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모기업인 농협금융 입장에선 그룹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생명보험 계열사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결과 농협금융의 자본비율은 소폭 하락했다. 대규모 자금을 중앙회로부터 받았고,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효과가 사라진 셈이다. 작년 9월 말 보통주자본비율(12.4%)은 전년 말 대비 0.1%포인트 내렸다. 단순기본자본비율(4.55%)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금융지주는 은행, 증권 등의 계열사로 투자금을 내려보내도 자본비율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험 계열사에 자금을 지원하면 관련 규정에 따라 자기자본은 감소한다.
농협금융은 올해도 자금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농협생명에 추가로 자금을 투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최대 계열사인 농협은행에도 자금을 더 보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농협은행은 낮은 수준의 단순기본자본비율로 인해 당국으로부터 시정 권고를 받은 바 있다. 실적 성장과는 별개로 자본확충이 계속 필요한 상황이다.
회사채 시장이 살아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최근 영구채를 발행한 KB금융지주는 수요예측에서 투자자가 대거 몰렸다. 그 결과 5년 콜옵션 물량의 경우 금리를 4%대로 끌어내렸다. 지난해 5%를 훌쩍 넘기던 것과 비교하면 많이 하락했다. 이에 우리금융지주도 공모희망금리를 4.70~5.60%로 비교적 낮춰 잡았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올해 자금조달 계획에 따라 영구채 발행을 하기로 결정했다”라며 “확보한 자금은 계열사 지원 등에 사용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