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별 역대급 성과급 결정···농협銀, 기본급 대비 400% 지급
주주들, 호실적에 걸맞게 성과급에 상응하는 배당 확대 요구
배당 수준 고심···배당금 확대와 대손충당금·준비금 적립 놓고 딜레마
"적절한 수준의 합의와 사전 조율 못한다면 이해당사자 간 충돌 우려"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시중은행들이 역대급 성과급을 결정하면서 배당 수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성과급에 상응하는 배당을 할 것인지, 아니면 배당을 자제하고 대손충당금·준비금 또는 사회공헌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주주들의 배당 확대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재원 활용 방식을 놓고 적절한 수준의 합의와 조율을 하지 못한다면 이해당사자 간 충돌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역대급 성과급 결정 이후 배당 확대 요구 늘어···주주가치 제고 강조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기본급 대비 361%, KB국민은행은 280%, NH농협은행은 40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KB국민은행의 경우 1인당 340만원의 특별격려금도 별도로 지급하기로 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현재 성과급 수준을 논의 중이다. 지난해 하나은행은 이익 연동 특별성과급으로 기본급의 300%를 책정했고 우리은행은 기본급의 300%에 1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한 바 있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경신한 만큼 이를 웃도는 성과급이 책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성과급의 기반이 되는 것은 실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은 지난해 1~3분기 이자 이익으로 40조6000억원을 벌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6조9000억원이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금리 인상이 지속되면서 최대 실적도 잇따라 경신하는 중이다.
지난해 5대 금융지주 연간 순이익도 20조원 규모에 육박할 전망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 5대 지주 순이익을 살펴보면 신한금융 4조3154억원, KB금융 4조279억원, 하나금융 2조8494억원, 우리금융 2조6617억원, 농협금융 1조9717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성과급이 결정된 후로 주주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상 최대 실적을 직원들의 성과금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불만들이 나오고 있다. 그 동안 시장에서 은행들이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배당성향은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해왔던 만큼 주주가치 제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최근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파트너스)은 국내 상장한 7개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JB·BNK·DGB금융지주)를 상대로 50% 이상의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사전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 5년 간 4대 금융지주의 평균 배당성향(당기순이익 대비 배당액의 비율)은 20% 중반이었다. 외국의 경우 50%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배당은 인색한 편"이라며 "호실적에 걸맞게 모기업인 금융지주의 배당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위기 확산 대비 및 당국 요구 따라 충당금 적립 시 배당 여력 감소···지주별 이해당사자 간 이견 조율 필요
하지만 시중은행권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2022년 결산을 앞두고 배당금 확대와 대손충당금·준비금 적립을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대손충당금 및 대손준비금을 추가로 적립하게 되면 최근 주주들이 요구하고 있는 배당 확대가 쉽지 않다. 은행이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에게 환원하지 않고 쌓아놓게 되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 가시화로 위기 확산에 대비해 손실 흡수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배당 재원이 줄어드는 만큼 은행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금융당국의 제동도 관건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필요 시 은행에 충당금 적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예고했다. 현행 규정은 금융당국이 미래 불확실성 등에 대비해 은행에 선제적인 대손충당금·준비금 추가 적립 등을 요구할 근거가 없다. 제도적 권한이 없기에 자율적인 협조에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식으로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 신설 등을 골자로 하는 은행업 감독규정 개정을 추진해 오는 상반기 중 시행할 계획이다.
대손충당금은 손익계산서상 당기순이익 감소요인으로 자본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배당이 불가하고, 대손준비금은 재무상태표의 자본항목으로 추가 대손준비금 적립이 있을 경우 배당가능이익이 줄어들게 된다. 지난 2016년 이후 보통주자본으로 인정되었으나 배당은 불가하다.
지주사의 이익 대부분을 차지하는 은행이 대손충당금·준비금을 더 쌓아야 한다면 배당 확대 정책에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충당금과 준비금 취지는 동감하고 십분 이해하지만 강제 수단을 도입하는 것 자체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당국의 거시 관점에서 선제적으로 대손준비금을 추가 적립하라는 방침이므로 따를 수밖에 없다"며 "주주배당에 영향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배경을 감안해 지주별로 사전에 이해당사자 간 이견 조율 작업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적절한 조율과 합의를 하지 못한다면 이해당사자 간 충돌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대내외적 상황을 감안하면 선제적 위기 관리 측면에서 충당금 적립의 명분은 충분하다"며 "시장 변동성 확대로 건전성 강화가 화두가 된 만큼 사전에 주주들과 소통하면서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은행 호실적 배경에 대출 수요가 주효했던 만큼 사회 환원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은행의 공적 기능을 고려하면 사회공헌이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6일 열린 '가상자산 관련 금융리스크 점검 토론회'를 마치고 은행들이 이자 장사로 성과급 잔치를 하는 것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이 원장은 "은행은 거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라면서 "발생한 이익의 3분의 1을 주주환원하고 3분의 1을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면 최소한 나머지 3분의 1 정도는 우리 국민 내지는 금융 소비자 몫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