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학과 증설 등 정원 늘리기 한계···​​​​​​​"고급 인재 육성 어려워"

반도체 공정. /출처=연합뉴스
반도체 공정. /출처=연합뉴스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반도체 기초 연구비는 500억원 수준으로 지난 10년 동안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연구비 지원 없이는 반도체 전공 교수를 영입하기 힘들다."

19일 반도체 부문 전문가인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는 <시사저널e>와 통화에서 반도체 인력양성이 어려운 이유로 연구비 부족을 꼽았다. 대학의 연구개발 예산이 줄면 반도체를 연구할 교수가 줄고, 공부할 학생 수도 줄어든다는 얘기다.

◇연구비 주는데 학과 정원 늘리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에 따르면 정부의 반도체 연구개발 지원 예산은 2009년 1003억원에서 2017년 314억원으로 줄었다. 황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연구개발 예산은 500억원 규모다.

황 교수는 "반도체를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이 있더라도 가르칠 교수가 없다"며 "교수와 연구자들을 반도체 학과에 불러오려면 연구비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학의 반도체 연구 환경은 수요을 뒷받침하기에 태부족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도 인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대책은 '반도체 학과 정원 늘리기'에 그쳐 반도체 선도 기업들이 원하는 석박사 인력양성은 요원하다는 평가다. 석박사 출신 인력은 해마다 1000명 이상이 필요하지만 연구비 지원 등 고급인력 양성을 위한 대책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부에 "반도체는 국가 안보 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근간"이라며 "목숨을 걸고 반도체 인재를 육성하라"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 발언 한 달 만에 교육부는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방안'을 내놓았다. 10년간 반도체 인재 15만명을 육성하고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2000명 늘린다는 내용이다. 

세종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출처=연합뉴스
세종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출처=연합뉴스

교육부는 산업계 전문가를 겸임·초빙교수로 활용한다는 방안도 내놨다.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대학의 겸임·초빙교수도 연구 실적이나 교육 경력을 반드시 갖춰야 하지만 이를 대학 자율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

산업계 반응은 긍정적이다. 한국 반도체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기술 해외 유출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은퇴한 인력들이 갈 곳이 없다. 국내에 일자리가 없으면 해외로 나가게 되는데 이때 기술 유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국내에서 이들이 교수로 활용되면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방안 역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를 풀어줘도 국내 대학의 열악한 재정 상황으론 반도체 전문가들의 연봉을 맞춰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에 지급되는 정부 연구비도 메마른 가운데 이들을 끌어들일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겸임·초빙교수 채용만으론 양질의 교육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한 석박사 인력양성을 위해선 전임교수 확충을 위한 지원이 앞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교수는 "반도체 전문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겸임교수보다는 전임교수 체제로 운영돼야 한다"며 "장기적인 전문교육으로 석·박사급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기업들은 직접 인력을 양성하기에 나섰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 대기업은 서울의 주요 대학들과 손잡고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를 신설했다. 졸업 후 최소한의 채용절차만 통과하면 100% 계약기업으로의 취업이 보장된다. 연세대·성균관대 등은 삼성전자와, 고려대·한양대·서강대 등은 SK하이닉스와 계약을 맺고 있다.

다만 계약학과 신설도 '단기 처방'이라는 게 학계의 진단이다.  결국 근본적으로 반도체 인력을 육성하기 위햐선 정부의 예산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 교수는 "계약학과는 5년 안팎을 주기로 다시 계약을 맺기 때문에 전임교수를 채용하지 않고 학부생만 있어서 연구 성과를 내기 힘들다"며 "정부는 전임교수를 채용할 수 있도록 연구비 지원을 늘리고 석박사 학생 유치에 힘 쓰는 등 중장기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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