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쟁점 현대중공업 사건은 대법에 계류 중···재판부 “판례 기다릴 수 없어, 자체 판단”
산업계 우려에도 원하청 교섭 인정 하급심 사례···하청노동자 ‘실질적 노동3권 보장’ 목적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현대제철이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행정소송이 13일 시작됐다.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실질적 지배력’을 가졌다면 원청이 하청근로자에 대한 교섭 의무를 부담하는지, 현대제철도 이 같은 사례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현대제철이 중노위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 1차 변론기일을 열고 쟁점을 정리했다. 원고인 현대제철과 피고인 중노위, 보조참가인 전국금속노조 등 당사자들은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 없다며 재판부의 판단을 요구했다.
이 사건은 사내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로 구성된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이하 금속노조)가 현대제철에 ▲산업안전보건 ▲차별시정 ▲불법파견 해소 ▲자회사 전환 관련 협의 등 4가지 의제에 대한 교섭을 요구하며 시작됐다.
현대제철은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에 응하지 않았으나 중노위는 ▲산업안전보건 이슈에 제한적으로 현대제철이 하청 사용자와 공동으로 교섭 의무를 부담한다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봤다.
중노위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노동조건’은 작업내용과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며 이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는 현대제철은 교섭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정했다. 현대제철의 철강 제조공정은 원·하청 노동자가 같은 사업장에서 복잡·다양한 산재 위험원에 함께 노출될 수 있는 공통의 작업환경이라는 게 중노위의 판단이다. 하청노동자의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노동3권이 부당하게 제한되는 결과를 막기 위해서 제한적으로나마 하청에 대한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인정해야한다는 취지다.
이날 현대제철 측은 같은 쟁점으로 대법원에 계류돼있는 현대중공업 사건 선고를 기다린 뒤 이 사건 판단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대법원이 원청의 하청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가 있다고 확인한다면, 현대제철이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놓고 재차 법리 다툼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계속해서 기다릴 수는 없다”며 “재판부 나름대로 판단하겠다”고 정리했다. 재판부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정리한 서면을 요구하며 오는 4월14일 두 번째 변론기일을 지정했다.
산업계는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에 직접 교섭을 요구할 선례가 마련되면 향후 임금과 근로조건 등으로 분야가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원청이 하청업체 노조와 교섭하면 명백한 지휘·명령에 해당해 불법파견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하급심에서는 원청의 하청에 대한 교섭 의무를 인정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형식적인 하청 사용자가 아닌 실질적인 원청 사용자에게 교섭 의무를 부과해 하청노동자들의 실질적 노동3권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는 목적에서다.
전날 같은 법원 행정12부(재판장 정용석 부장판사)도 씨제이(CJ)대한통운이 중노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CJ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노조법이 금지하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중노위 처분이 적법하다고 봤다. 이 사건 재판부는 하청노동자들이 권한이 없는 하청 사업주와 실질적 교섭이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그 원인과 책임이 원청 사업주에게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