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에 ‘근로자 관련 협의’ 제안···민사소송 중인 대법원에도 제출
노조 “형사책임 덜거나 민사 선고 지연 전략···대법, 조속히 결론 내야”
회사 파견법 위반 유죄 선고···法 “불법파견 용인시 고용불안 커져”

협력업체 노동자를 불법 파견받은 혐의로 기소된 카허 카젬 전 한국지엠(GM) 대표이사 사장이 9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협력업체 노동자를 불법 파견받은 혐의로 기소된 카허 카젬 전 한국지엠(GM) 대표이사 사장이 9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지난 9일 형사법원에서 불법적인 근로자파견을 확인받은 한국지엠(GM) 법인이 선고를 불과 며칠 앞두고 정규직 노조 측에 협상을 제안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근로자들은 회사가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대법원이 조속히 관련 민사소송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국GM은 지난 6일 정규직인 금속노조 한국GM지부에 ‘생산하도급 근로자 관련 협의’를 제안했다.

로베르토 렘펠 대표이사 사장 명의로 발송된 공문에서 회사는 “생산하도급 근로자에 관한 현안 해결이 경영정상화를 위한 중대한 과제라고 보고, 이와 관련된 노력을 지속해 오고 있다”며 “회사는 현안해결 노력의 연속선상에서 상호 신뢰 아래 추가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진정한 노사 상생의 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현안에 대한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노사 간 협의를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회사의 공문을 받은 노조 측은 “꼼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회사가 형사사건 1심 판결 직전 관련 공문을 보낸 데다, 이 공문을 근로자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을 심리 중인 대법원에도 제출했기 때문이다.

노조 한 관계자는 “한국GM은 발탁채용을 하겠다며 협조공문을 발송했으나 불법파견이라는 범죄를 축소하거나 유리한 양형 근거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현재도 진행중인 불법파견 이슈와 관련해 럼펠 사장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심리 중인 대법원에도 관련 문서를 제출했는데 민사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GM은 지난해 5월 260명 발탁채용을 진행했으나 고용노동부가 군산, 부평, 창원공장에서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1719명에 한참 마치지 못하는 숫자다. 직접생산 공정과 1차 하청 노동자들만을 상대로 진행하는 절차에서는 회사의 진정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한국GM은 그동안 여러 차례 법원에서 불법파견 판단을 받았다. 지난 2013년 대법원이 창원공장 843명에 대한 불법파견을 인정하며 닉 라일리 사장 등에게 벌금형을 선고했으며, 2016년에는 근로자 5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이 원고 승소로 결론 나기도 했다. 민사소송은 8년째 총 4건이 진행됐다. 2020년부터 두 개의 사건을 심리 중인 대법원은 “관련 사건을 통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검토 중”이라는 이유로 선고를 미루고 있다.

노조는 전날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늦어진 정의는 정의라고 할 수 없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대법원이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9일 인천지방법원은 카허 카젬 전 한국GM 사장과 한국GM 법인의 파견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파견법에 따르면 근로자 파견은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 업무를 제외하고 전문지식이나 업무 성질 등을 고려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에 한해 가능하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이 법원 형사2단독 곽경평 판사는 “한국GM과 각 사내협력업체 및 그 소속 근로자들의 사이 관계의 실질은 파견법이 규율하는 근로자 파견 관계에 해당한다”며 “피고인들은 이 사건 각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의 근로관계가 파견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근로자파견 관계에 해당할 수 있음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도 이를 용인한 채 근로자파견 관계를 맺거나 유지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곽 판사는 “외형상으로는 사내도급의 형태를 띠면서 실질적으로는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는 불법파견이 만연한 현재의 노동환경에서 이러한 형태의 불법파견을 용인할 경우 제조업 전반으로 확대돼 더 많은 수의 근로자들이 열악한 근로조건과 고용불안에 내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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