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현금서비스 잔액 52조원 돌파 전망
코로나 사태 이후 최대치 경신하며 부실화 가능성
"다중채무자 중심으로 연체율 추이 살펴보고 리스크 관리 강화해야"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주요 카드사들이 한도를 줄이고 대출을 보수적으로 운영하면서 카드론(장기카드대출) 취급액은 감소했지만 금리가 더 높은 현금서비스(단기카드대출)는 증가했다. 현금서비스는 중·저신용자 비중이 커 부실 위험이 비교적 높은 만큼 이용자의 채무 부담이 커져 가계 부채 부실화의 뇌관의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는 부실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선별적 금융지원이나 규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4일 여신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7개 전업 카드사 기준 누적 현금서비스 이용 금액은 47조7797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12월 현금 서비스 이용금액이 전달 대비 4조3725억원(9.6%)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연간 이용금액은 52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 2019년(52조3244억원) 수준으로 3년만에 최대치다.
현금서비스는 신용카드 이용자가 별도의 까다로운 대출심사 없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앱을 통해 카드사가 내준 이용 한도 내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서비스다. 대출 기한이 한 달 정도로 짧아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주로 활용한다. 간편하게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금리가 법정 최고치(20%)에 달한다.
지난해 9월 기준 고신용자(1~2등급) 현금서비스 금리는 평균 12.07~15.84%이며 중신용자(5~6등급)는 17.88~19.81%에 육박했다. 급증하는 이용액은 서민들 사이에서 실생활에 필요한 급전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는 "비싼 이자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현재 카드사들은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위해 지난해 4분기부터 카드 이용한도와 대출 줄이기에 나섰다.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조달금리가 대폭 상승해 수익성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내실 경영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 카드론 누적 이용금액은 지난해 9월 34조6227억원에서 11월 34조2866억원으로 3361억원 줄었다.
업계는 최근 카드사들이 리스크 관리에 나서면서 카드론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카드론 취급이 어려워진 중·저신용자들이 현금서비스를 늘려가고 있단 점이다. 지난해 물가가 올라 지출액이 늘어난 가운데 금융권 대출 금리가 급등하면서 이자 부담이 커지고 제2금융권 회사들이 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출 줄이기에 나서자 현금서비스가 폭증했단 분석이다.
정부 정책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업계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강화되면서 카드론을 받기 어려워졌단 설명이다.
DSR이란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의 연 소득 대비 전체 금융부채의 원리금 상환액 비율을 말한다. 지난해부터 총 대출액이 2억원을 넘는 대출자는 DSR이 40%를 넘기지 못하도록 규제가 강화됐다. 제2금융권 대출까지 포함하면 50%를 넘을 수 없다. 여기에 카드론이 DSR 규제에 새롭게 포함된 것이다. 지난해 7월부터 규제가 강해져 총 대출액 1억원으로 하한선이 변경됐다.
DSR 규제에 카드론은 포함됐지만 현금서비스는 제외됐다. DSR에 막혀 카드론을 받지 못하는 차주들이 규제 밖 서비스인 현금서비스로 수요가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이어지고 있단 설명이다.
국내외 긴축 기조에 경기불황까지 겹치면서 올해 경제 상황은 카드사에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이 올해까지 지속됨에 따라 카드사의 조달 비용 부담도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란 관측이다.
가장 큰 고민은 자산 건전성이다. 시중은행과 달리 카드사의 현금서비스는 저소득층·저신용층이 주로 이용하는 만큼 차주의 채무상환 능력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가장 먼저 부실이 드러날 수 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고금리 여파로 현금서비스로 '빚 돌려막기'를 하다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한계 상황에 놓였다는 사람들의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업계는 여러 카드사에서 대출 한도까지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를 중심으로 연체율 추이를 살펴보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채무 2건 이상을 보유한 다중채무자의 카드대출 잔액 비중은 현금서비스는 79.7%, 카드론의 경우 87.7%에 달한다. 다중채무자 중 채무 3건 이상 차주의 경우 5년(2017~2022년) 평균 연체율이 2.5(카드론)~2.9%(현금서비스)로 전체 평균(2.4%)보다 크게 높고 전체 연체액의 70%를 차지하는 등 부실화 우려가 크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다중채무자 대출 비중이 높은 카드사는 향후 자산건전성 저하가 실적에 미칠 영향이 크게 확대될 수 있어 위험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며 "잠재위험이 현실화하느냐, 아니면 잠재위험으로 남느냐 여부는 각 카드사가 리스크 관리 방안을 어떻게 수립하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