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상장 미끼로 인수 대금 가로챈 혐의
재판부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직접 증거···신빙성 의문”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1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강규태 부장판사)는 3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씨가 피해자와 맺은 계약서에서 코인 상장을 확약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범죄의 증명이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서에는 BXA코인 상장을 확약하는 내용이 없다”며 “피해자는 피고인을 고소하기 전까지 왜 상장하지 않느냐고 항의한 적이 없고, 오히려 잔금지급 기한을 늘려달라며 담보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직접적 증거는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데, 그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이 있다”며 “오히려 피고인은 ICO(가상자산공개)를 하지 않겠다며 일반인을 상대로 코인을 파는 것을 경계했다”고 부연했다.
검찰이 피해자로 판단한 김병건 BK매디컬그룹 회장에 대해서도 “주식투자 경력과 가상화폐 업계 관련 경력이 상당하고 관련 지식도 많다”며 ”BXA코인의 국내 판매가 문제되면서 금융기관에서 빗썸에 해당 내용을 문의하는 공문을 발송한 적이 있는데 피해자는 이러한 질의내용도 다 전달받았다. 결국 피해자는 피고인의 말만 믿고 BXA코인이 상장돼 인수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착오에 빠질 정도로 관련 지식이나 경험, 정보력이 크게 부족하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판단했다.
선고 후 이 전 의장은 소감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법원을 빠져나갔다.
이 전 의장은 2018년 10월 김 회장과 4000억원대 빗썸 매입 계약을 맺으면서 빗썸홀딩스 지분 인수와 BXA코인 상장을 미끼로 인수대금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전 의장이 BXA코인 상장 무산 사실을 김 회장에게 알리지 않고 채권과 주식을 잔금으로 받는 등 2018년 10월부터 2019년 2월까지 8회에 걸쳐 총 1120억원을 가로챘다고 판단했다.
BXA코인은 빗썸에 상장되지 않았고 김 회장의 빗썸 인수도 무산됐다. BXA코인에 투자한 피해자들은 두 사람 모두를 고소했지만 수사기관은 김 회장도 이 전 의장에게 속은 피해자라며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결심공판에서 “이 전 의장이 범행을 계속 부인하고 있고 김 회장뿐만 아니라 코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매우 크다. 죄질이 불량해 중형이 선고돼야 한다”며 징역 8년을 구형했다.
반면 이 전 의장은 최후 진술에서 “회사 매각시 임직원에게 영향이 없도록 하고 인수자인 김 회장에게 문제가 될 약속을 하거나 속인 적도 없다”며 “이 모든 부분은 다른 주주들과 논의해 신중히 결정했다고 생각했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이 전 의장의 변호인도 “해외법인을 통한 빗썸홀딩스 인수를 제안한 사람은 이 전 의장이 아니라 김 회장임을 공판 과정에서 확인됐다”며 “빗썸 가치에 투자한 고소인(김 회장)은 소액 투자자들에게 사기 판매가 문제가 되자 뒤늦게 형사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피고인을 사기로 고소하며 책임을 전가한 사건”이라고 성격을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