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빌라 낙찰가율 급락, 3년 만에 최저
전세 사기 우려에 매수 심리 위축
1월 경매 물건 화곡동 17%·미추홀구 47%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경매 시장에서 빌라의 낙찰가율이 80% 밑으로 떨어지며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낙찰가율은 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로 물건들이 제값(100%)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수도권 중심의 빌라를 매입했던 빌라왕 사망 사건의 여파로 투자 심리가 위축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3일 법원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빌라(연립·다세대) 낙찰가율은 평균 79.8%를 기록했다. 지난달(84.9%) 대비 하락한 것으로 2019년 12월(79.3%)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낙찰가율이 79.8%라는 건 감정가 1억원인 빌라가 7890만원에 낙찰됐다는 의미다. 인천도 낙찰가율이 70.7%로 지난해 5월(69.4%) 이후 1년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낙찰률(경매 건수 대비 낙찰 건수)도 급락했다. 서울은 637건이 경매에 부쳐졌지만 이 중 71건만 낙찰돼 낙찰률 11%를 기록했다. 경매 시장에 나온 물건 10건 중 1건만 주인을 찾은 셈이다. 인천은 211건 중 25%인 53건이 주인을 찾았다.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2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br>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2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업계에선 인천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를 덮친 전세 사기 여파가 경매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빌라 임대차 시장에선 일명 ‘빌라왕’ 공포가 극에 달하고 있다. 빌라왕 사태는 수도권에서 1139채의 빌라·오피스텔을 ‘무자본 갭투자’ 형태로 사서 임대한 김모씨가 지난해 10월 급사하면서 드러났다. 김씨가 사망하면서 임차인들이 전세보증금 334억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후 인천 미추홀구 등지에서 오피스텔 수십채를 보유하다 숨진 ‘20대 빌라왕’ 송모씨, 강서·영등포구에서 240여채를 사들여 세를 놓다 사망한 ‘건축왕’ 정모씨도 사망하는 등 유사 사건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빌라왕보다 더 악성인 ‘빌라의 신’까지 등장하며 세입자들의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성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HUG로부터 받은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 자료에 따르면 상위 30위 악성임대인들이 낸 보증 사고 건수는 3630건, 금액은 7584억원에 달했다.

/ 그래픽=시사저널e
/ 그래픽=시사저널e

문제는 전세 사기가 집중됐던 화곡동과 미추홀구 일대에서 진행될 경매 물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달 서울 전체에서 1월 한 달간 경매 진행 예정인 빌라(지문 매각·일부 지분 제외)는 322건이다. 이 중 17%인 54건이 강서구 화곡동에 있다. 인천의 경우 전체 물건 173건 중 47%(81건)가 미추홀구에 집중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화곡동과 미추홀구의 경우 다른 지역과 비교해 물건이 많고, 3회 이상 유찰된 물건도 많은 편이다”며 “세입자 관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향후 경매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세 사기 우려와 함께 고금리·집값 하락 상황이 맞물리면서 경매 시장 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봤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주택시장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커지면서 경매 시장에 몰렸던 투자수요도 관망세를 유지하는 모습이다”며 “집값 하락과 거래 절벽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금리 기조가 지속된다면 낙찰가율은 더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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